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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왜 이율곡(李栗谷) 유적이 경기도 파주에 있지? 강릉 아닌가?"

 

 이이(李珥 1536~1584)의 생애와 관련이 깊은 지역이 세 곳 있다고 한다.

첫째는 그가 태어난 外家가 있었던 강릉 오죽헌이고,

둘째는 처가가 있었던 황해도 해주의 석담...

셋째는 덕수이씨 가문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며

그가 성장했던 경기도 파주 율곡리이다.

그러니까 그의 호인 율곡(栗谷)은 밤나무골을 뜻하는 아주 소박한 이름인 것이다.

 '밤나무골 이이 선생이라 할 수 있었다.^^

 

 '햐~  평화롭구나!'

이이 유적지는 꽤 넓었으며 말끔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보이는 곳은 '자운서원'으로 1615년 광해군 때 지어졌으니까 

율곡선생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리는 없다.

그의 學問과 德行을 추모하기 위하여 율곡이 돌아가신 후

지방 유림들에 의해 만들어진 書院이기 때문이다.

 

 서원을 위에서 살펴본 모습으로 한 눈에 들어오게 잘도 그렸다.

서울 중심부에서 파주 가는데도 가까운 편이 아니니

서원 있는 이곳이 옛날에는 얼마나 산골짜기였을까!

3번 건물이 공부하는 교실(강인당)이며, 공부가 끝나면 

대문 양옆에 있는 4~5번 기숙사 건물로 들어가 먹고 자고 하였다.

요즘 아이들이 말하기를, 아이구! 심심해~~~ ㅎㅎ

 

  '뭐가 심심해, 공부하는 환경이 좋았지!'

 서원담장에 비하여 느티나무가 얼마나 큰지 비교해보라!

2014년 - 1615년 (서원이 지어진 때) = 399년

서원은 한국전쟁인 6.25 때 완전히 파괴되어 1970년에

복원하였다는데 공부하는 교실 양쪽으로는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었으니 과연 전쟁을 피해갔을까?

나무들을 보자마자 넋이 빠지며 교실에는 관심 없고 홀딱 반했다.

위의 느티나무가 묵직하며 말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품격 있는 선비처럼 보였다면...

 

 반대편 이 느티나무는 보기만 해도 감동과 웃음이

흐드러지게 하였다. 후쿠선장, 바다 속의 몇 백 년 된 문어가

작은 조개들과 미역, 파래를 달고서 눈을 데록거리는

모습으로도 보였고, 울퉁불퉁 무서운 듯 늠름하면서도

귀여운...? 아이쿠! 죄송합니다.

400년이 넘으셨는데 어쩌자고요?

좌우지간 참으로 멋지십니다!...ㅎㅎ

 

 유적지 중앙에 있는 연못...

 

 북쪽으로 향하면 율곡의 가족묘가 있다.

보통은 어르신을 위쪽에 모시고 차례로 내려오지만

율곡선생과 부인이 가장 높은 곳에 계셨고 ...

그 다음이 형님부부, 그 아래가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합장묘, 그리고 맨 아래에...

사진에서 보이는 율곡의 첫째 아들 묘가 있었는데

아마도 李珥가 벼슬이 있었기에 높은 곳에

계시리라 헤아려졌다.

 

 

                   <이이 묘에 있는 문인석 >                                              <신사임당 묘에 있는 문인석>

 

 이율곡과 그의 부인 묘이며 부드럽게 곡선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언뜻 남편이 업어준 모습으로 보였다할지,

다 합장묘였는데 왜 율곡만 따로 모셨을까.

나중에 기념관에 가서 가계도를 보니 율곡은 사임당의

셋째 아들이셨으며 부인이 셋이나 있어서? 오호~~~!

점잖게 생기셨던데 얼굴과는 전혀 상관 없이

당시에 벼슬이 있으면 그랬나 봐!..^^

 

 가려는데 잔디밭에 있는 잘생긴 소나무가 옷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아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이밖에도 율곡유적지에는 우암송시열이 비문을 지은

자운서원묘정비,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

율곡기념관 등이 있었다. 다음 기회에는 '화석정'이라 하여

율곡이이 선생이 詩를 짓고 묵상하며 보내셨다는 

亭子에 가보고 싶다.

 

 

 

 

   2014년  8월  7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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