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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수원 화성을 구경하고 융건능에 왔더니 오후 5시가 넘어서 들어가질 못하고 돌아가 아쉬웠던 기억에...

요번에는 택시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는데 아저씨가 용주사 안에 능이 있다고 내려주시질 않는가!

 "지도를 봐도 그렇지 않던데요?"

 "가보세요, 절 안에 있어요."

 

 

    

 

 믿고서 내렸더니 절 안에 있기는? 최소한 수원에 대해서 역사공부를 하셔야지 말이야.

국내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조차 이렇게 안내한다면 이 무슨 부끄러움인가!

 

 용주사는 저녁 7시까지 구경하면 된다고 하니 융건릉을 먼저 다녀와야 해서 가까울 것이라 걸어가려고 했는데...

절에서 나와 돌아서니 갑자기 휑 한 것이 물어볼 사람도 없고 공사 중이라 길도 엉망이어서 다시 차를 타고서 가야만했다.

 

 

 

 융건능 입구는 조선의 다른 능들보다 좁았다.

마침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아 복잡해서 얼른 안으로 들어섰더니,

오른쪽으로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융능이고 왼쪽은 정조와 효의 왕후의 건능으로 나뉘어 있어...

아버지 사도세자 묘부터 찾았는데 아늑한 숲길에 이런 초원이 싱그럽게 펼쳐져있어 잠시 상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소풍을 와도 좋을 곳이었지만 물 이외에는 먹을 것 반입이 안된다하여 조금은 섭섭했는데...

능으로 소풍 갔던 기억이 많기도 하거니와 앉아서 먹으려고 맛있는 무엇을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네가 자결하면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자결하라!"

영조의 노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격해졌다. 땅에 조아린 세자의 이마에선 피가 흘렀다. 영조가 칼을 들고 자결을 재촉하니,

세자가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임금의 노여움은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세자의 절규를 외면하고,

영조는 끝내 명을 내린다. 

 "세자를 폐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깊이 가두라!"

 

 영조는 42살에 사도세자를 낳아서 무척 기뻐했다는데 당쟁에 휩싸여 아들을 잃었으니 나중에는 깊이 후회했단다.

세상에 어떤 아비가 아들을 그리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융능은 가로의 폭이 넓었다.

따라서 정자각으로 가는 神道나 御道가 넓게 조성 되어 있어 넉넉한 마음이 들었다.

무례하게도 나는 신도로 걷다가 어도로 걷다가 했다...^^

원래 왕의 묘들은 입구에 있는 홍살문과 앞에 보이는 정자각과 능침이 일치 되어 봉분이 보이지 않지만,

이곳은 홍살문과 정자각과 능침이 일치가 되질 않아 저 위의 합장묘가 오른쪽으로 들여다보이는데, 이는...

갑갑하게 뒤주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를 시원하게 해드리려는 정조의 효심이 반영되어 그렇다니,

과연 깊은 뜻이 서려있다며 고개가 끄덕끄덕 해졌다.

 

 

 

 햐~~~~

묘지에 왔지만 이런 모습만 봐도 보람이 느껴졌으니 어찌하리!..^^*

 

 혜경궁 홍씨는 노론집안의 딸로서 노론과 마찰이 있었던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택하여 비정한 여인이란 이야기도 있다.

노론 사람들에게 세자의 일들을 모조리 알리는 정보원역할을 했다니 남편을 지켜주려는 마음이 있기나 했던 것일까?   

평민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세자빈의 신분을 되찾고 궁으로 돌아와 6개월 만에 시아버지를 대하며 얼마나 어색했을까 만은 ...

시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덕분에 잘 지냈다는 인사를 올리자 영조는 그동안 널 보기가 어려웠는데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니

아름답구나 하며 감격했단다. 바로 아들 정조를 임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 였을 것이다.

이리하여 영조와 세손과의 유대감은 쌓여갔지만 정조가 왕으로 등극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무리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들일 것이었다, 그들 또한 정조를 제거하려고 애를 썼기에...

정조는 항상 몸을 사려야했으며 지금도 타살 되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한편, 당시에 뒤주를 가져온 사람이 바로  혜경궁 홍씨의 친정아버지였다니 놀라운 일이기도 했으며,

친정복권을 위해 '한중록'을 썼다는 말을 들으니 남편과 같이 묻혀있는 것이 과연 편안할까 의문이 생겼다.

 

 

 

 이제 정조의 능으로 향하려는데 지름길이 보였다.

아니, 굳이 지름길을 택하지 않더라도 산책하기 좋은 길들이 여럿 있었다.

어릴 적 밭고랑이나 논두렁을 지나 두근두근 어딜 갈 때처럼 정다운 길이 나타나서 좋았다...^^*

 

 

 

 10분쯤 걸어 정조와 효의 왕후 묘에 다다랐고...

가까이 가볼 수 없는 관계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이름 짓고는 용주사로 향했는데...

조선왕들의 무덤이 거의 비슷비슷했기 때문에 본 것으로 만족하고 왔으나 이제서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정조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쌍하고도 불쌍한 아버지일 것이다.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 같아 괴로워하던 정조가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신라 문성왕 때부터 이미 절이 있었으나 폐사 되었던 이곳에 세운 절이라 한다.

낙성식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서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이 용주사이며...

조선은 유교를 숭상했기 때문에 절을 세우는 것이 쉽진 않았겠지만 불심과 효심이 어우러져 뜻을 이루었다 하겠다.

 

 

 

 모란이 활짝 폈던 날에 정조와 관련된 수원 화성과 융건릉과 용주사를 모조리 다녀와 뿌듯하다.

남편에 이어 아들 정조가 승하한 후에도 한참을 더 살았던 혜경궁 홍씨의 삶은 어떠했을 것이며...

아버지와 외척 사이에서도 갈등이 많았을 정조대왕!

암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는 내사람을 심으려 하지 말고 인재를 고루 등용해서 서로 상생하는 방법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아쉬운 점이라면 용주사 대웅전 앞에 정조가 심었다는 200년이 넘은 천연기념물 제 264호의 회양목과,

사도세자의 묘 앞쪽에 있다는 '곤신지'라는 연못을 못 보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무릇, 하나쯤 남기고 오는 여행이라야 다음에 또 이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위로로 삼고 기회를 가져보자!

 

 

 

 

 2015년  5월   4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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