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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품은 한지를 들고 저자거리에 나갔다.
千字를 다 썼으니 책으로 엮으려는 마음으로 시간이 걸리면 기다리려고 작은 책도 하나 들었는데...
마침 점심때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햄버거 집에도 와글와글
생과일 주스집도 줄을 길게 서있었고
커피 한잔씩 들고 모듬으로 서있는 사람들에
신호등 이편저편에서 새학기를 맞아 반갑다는 인사...
대학가이니 그만그만한 20대들이 사거리에 빽빽하였다.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거리가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400년 전의 선비가 나타나는 '별에서 온 그대'가 떠올려지는 것은 왜일까?
최첨단시설 하에 공부하는 그들 틈에...
韓紙를 들고 나타난 여인!
복사를 해주고 논문을 책으로 엮는 가게로 들어서서 한지 뭉치를 내밀었더니...
책으로 엮기가 어렵단다. 이유를 설명해주려는 기미도 없이...
"시간이 걸려서 그러시나요?"
"아니요, 못합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거절만 들으니 신세가 처량해지며 21세기에 19세기 여인이 된 느낌이었다.
무조건 안된다니까 그다음질문을 어떻게 해야할까 더듬거려지고...
그들 눈에는 내가 시대를 거슬러 서당에 어렵사리 들어가
이제 서야 책 한권 띠고 책거리하는 여인처럼 보일수 있겠다 싶었다.
'한 군데만 더 들렀다 가보자!'
나라면 궁금해서 쓴 것을 구경이라도 해보자 할 텐데 어쩌면 표정들도 변화가 없을까.
인사동이라면 혹시 모르지만 마치 천연기념물을 대하는 얼굴들이니...
의기소침(意氣銷沈)하다 연세가 있으신 분을 만나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여쭈었더니,
"韓紙가 약해서 그렇습니다, 뻣뻣한 종이라야 풀칠을 하거든요."
"네에..."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저자거리를 지나...
사람이 듬성듬성 있는 길로 접어들자 비로소 편안해지며...
21세기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내가 기특해지기까지 했다...ㅎㅎ...
문명을 누리며 활기차게 지내던 시절도 있지만 이제 좋아하는 것 자체가 달라지고,
車 타고 움직이는 것보다 괴나리봇짐에 산길을 넘어 돌아오는 것이 좋으니 어쩌랴!
책으로 엮진 못하였으나 양지바른 들길을 지나며 냉이꽃을 발견하고는 함박웃음에 서운함을 덜 수 있었다.
한나절 잠시였지만 시대를 넘나들다 온 것만 같다.
2016년 3월 8일 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