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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나설 때는 동쪽으로 향했는데 뜻밖에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어찌됐건 바람(?) 맞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오랜만이니 점심이나 하자는 소식이 있었다.

남쪽으로 가야 귀인을 만나는 수였나 보다...ㅎㅎ


 회현역에 도착해보니 점심시간이 한 시간정도 남아 소식을 달라하고는 왔다갔다 시장구경을 하였다.

경기가 나쁘다 해도 커다란 시장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남산공원으로 오르는 길이 보여 그 쪽으로 향하고도 싶었으나...

언제 연락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부근에서 맴돌며 문득 崇禮門을 찾아갔었다.

버스를 타고나 지났지 서울에 살아도 일부러 숭례문을 구경하러 가지지 않는데...

우리나라 국보 1호이니 복잡한 시장을 떠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조선왕조를 세운지 3년째인 1394년(태조 3)에 한양이 새 도읍지로 정해지고...

도성건설 계획에 따라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고 곧이어 경복궁을 건립하였으며,

수도 전체를 방어할 목적으로 도성 둘레의 네 산에 성곽을 쌓았다.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을 두어 도성 내외로 출입하기 편리하게 하였고,

정문인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이라 이름 지었다.]

읽어봄직하다.




 햐~~~

밖이 환하니까 천장이 컴컴해서 무슨 그림이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질 않았다.

요리조리 빛을 이용하여 잠깐 밝아졌을 때 담아왔더니 용 두 마리가 지나는 사람 검사하고 있었네!!...ㅎㅎ

그 것도 모르고 집에 와서 발견했으니 국가의 보물이라 쉽게 보여주질 않고 망설이다 살짝 보여준 것으로 여긴다.

왼쪽 아래는 '장군목'으로 대궐이나 성문 등 커다란 문을 닫고 잠글 때 빗장처럼 가로지르는 나무였다.




 육중한 성문 뒤쪽을 살펴보았다.

한옥에서 살 때나 느껴보고 오랜만이었는데 무뚝뚝하지만 않고 듬직하니 멋스러웠다.

사신을 마중하거나 배웅하고 군사를 출병시킬 때 나라의 관문으로 문루에서는 죄인을 다스리기도 했으며,

도성내부의 왕궁과 백성을 지켜주고 통금시간에는 성문을 닫아 출입을 통제했다니 쓰임새가 다양하였다.





 성문을 나와 버스가 왔다 갔다 하는 길에 붙어 담아보았다.

양쪽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으며 일반인이 오르지 못하게 되어 있어 궁금하기도 했는데,

1899년 홍예문(무지개 모양의 문) 아래로 전차가 통과하면서 성문을 통제하던 고유의 기능이 사라지고,

도로 확장에 따라 성곽의 철거 등 축대와 문루로만 이루어진 성문으로 남게 되었다가...

2008년에 일어난 화재로 복구과정에서 左右 성곽을 동쪽 53m 서쪽 16m 복원하였다.




 바람만 드나들 뿐 앉을 의자 하나 없는 이곳에 가려린 여인이 겨울옷을 입고 지키는 듯 보였으나...

점심 먹으려고 우연히 다시 지나며 이런 풍경을 대했다.

수문교대식은 아닌 듯하고 별일이 없는지 한 바퀴 돌고 나가는 풍경일 듯싶다.

남대문시장과 빌딩들의 복잡한 都心이지만 崇禮門 앞을 넉넉하게 만들어 숨통이 자유로웠으며,

바람 맞은 덕분에 남쪽에서 점심 맛있게 먹고 국보 1호까지 구경했구나!





2016년 11월  10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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