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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워싼사람들

어머님 덕분에...

평산 2017. 4. 7. 13:04

 "어머니, 돈 많이 가져오셨어요?"

 가차없는 질문에 어머니께서는 아주 신나하시며...

 "그래, 많이 가져왔다 20만 원 가져왔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머니와 며느리는 이야길 주고받으며 커다랗게 웃었다.

성인 4명이 게를 먹으러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외출이 힘든 어머니께서는 어딜 못 나가시니 그동안 용돈으로 300만 원을 모으셨다며,

여차하면 찾아 쓰라고 비밀창고를 말씀해주신지 몇 달이 흘렀다.

모르는 것보다야 누구나 정리는 필요한 것이라 편안하게 받아들였는데...

게를 좋아하시는 어머님께서 한턱 내시겠다며 며칠 전부터 가자 하셨던 것이다.


 "어디 가서 먹어야 하나, 수산시장까지 가야 할까?"

 "1인당 5만 원은 들어야 할 텐데......"

 사주신다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남편이 은근히 걱정하는 소리에...

 "얼마가 나올지 가서 생각합시다, 가자 하실 때 같이 가서 먹는 것도 효도지, 뭐......"





 살면서 대게 먹어볼 생각을 못했다.

엄두가 안 났던 것이며 어쩌다 꽃게 한 마리 찌개에 넣어 보글보글 국물이나 냈지...

꽃게 철이란 소식은 해마다 듣지만 찜이라도 해서 진득하게 앉아 먹을 생각을 못했다.

물론, 어머니께서 잘 살아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퇴근이 늦어 20분 늦어진다 했더니 약속을 꼭 지키라고 해서 불경기에 손님도 없을 텐데 있는 척한다고 생각했으나

도착해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고(아마 그들도 특별식 먹으러 온 듯 생각되었다. 아니면 말구...ㅎㅎ)

장소가 좁아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이고, 앉는 의자가 음식값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불편해서...

 "어머니, 이렇게 비싼 것을 먹는데 자리를 왜 이리 좁고 불편하게 해놨을까요?...ㅎㅎ..."

 "그러게 말이다, 옷 벗어 놓을 곳도 마땅찮네..."


 한 명은 다른 것을 시키고 나머지가 셋이라 '中' 자로 시키려 했으나 어머님이 한사코 '大' 자로 시키란다.

나도 속으로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마음껏 먹고 싶어 '大' 자를 외쳤는데 그리 되었다.

반찬 몇 가지와 게 튀김에 이어 고대하던 홍게 7마리가 먹기 좋게 잘라져서 나왔다.

 "와아~~~~~~~"

접시를 보는 순간 침이 꼴까닥 나왔다.


 4번 앞에 앉았으니 얌전하게 앞에서부터 공략한다며 다리를 들고 도구를 집어넣자, 어라?

껍데기만 있지 살이 없고 바람만 솔솔 나와서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까탈스러운 美食家 어머님이 대뜸...

 "맛이 없구나, 살이 통통한 꽃게만도 못한데???"

 "어머니, 작게 얘기하세요...ㅎㅎ..."


 섬세하게 먹는 것은 역시나 여인들로 어머님과 며느리였다.

꽃게보다는 깊은 바다에 살 것이라 한 단계 고급스러운 맛이란 생각은 들었으나,

홍게를 먹어봤다는 데에 의의를 갖자고 위로하며 아까우니 하나하나 공략해 나갔다.

4번을 처음 먹어서 바람만 나왔던 것과는 달리 1번은 비교적 통통해서 기쁨을 주었다.

남자들은 먹는 것이 힘들었는지 다리 몇 개 뜯더니 밥을 먼저 먹어주어서 고맙기도 했으며..^^

2번 몸통으로 향해서는 게살 먹기가 힘들어져, 먹어서 얻는 에너지보다 먹다가 드는 에너지가 더 많은 듯 헉헉~~

젓가락이 나을까 잠시 써보다 아니구나 싶어 다시 도구로 바꾸고...^^

5번은 먹기 쉽다는 소리에 뾰족한 다리를 살짝 미니 살이 듬뿍 나와서 거저로구나 싶었다.


 중간에 게딱지 밥을 먹어봤으나 그래도 게살이 맛 좋아서 두 수저로 만족하고,

남자들은 이미 수저를 놨으며 어머님마저 그만 드신다 손을 놓으셨는데 이제 몸통 3쪽에  

손쉽게 먹을 수 있는 5번 다리 몇 개가 남아 싸갖고 갈 정도는 아니어서 마지막까지 게살로 가득 채웠다.

그러니까 총 7마리 중, 어머님은 2.5마리쯤 드신 듯하고 난 3마리를 넘게 먹은 듯한데...

 "홍게를 먹어봤으니, 맛이 어떨까 궁금해하진 않겠지요?"

 "그래, 다음에는 꽃게찜을 먹어보자꾸나!"



 어머님께서 모으신 용돈이 그냥 우리 손에 들어오길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남은 시간 동안 드시고 싶은 것들 맛보며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덕분에 홍게를 맛봤네, 그려~~~~^^*





2017년   4월   8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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