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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에서 낙동강의 물 흐름을 따라 이곳에 왔더니 산의 이름이 병산이었다.

얼핏 보기에 부용대의 모습을 닮은 것도 같고 강물을 잘 이끌어 서원 앞에다 갖다 놓은 듯했다.

유생들이 서원에 공부하러 들어온 시절에는 깊숙한 산골로 짐작되어...

어릴 적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 온 것처럼 그들도 이별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졌다.




 병산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밑에서 보기에 그저 예쁜 기와집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서애 류성룡이 선조 5년(1572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하며,

광해군 6년에 류성룡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는 유림에서 사묘를 짓고 향사하기 시작하면서 명품 서원으로 자리잡았단다.




 1863년(철종 14년)에 '병산(屛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는데...

사액 사원이란 오늘날 사립 중학교(?)로 짐작했으나 나라에서 인정한 서원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 서원을 말했다.

예를 들면 서적이나 토지, 노비들을 하사받았던 것이다.




 서원의 정문에는 복례문이라 하여 '욕망과 탐욕을 이겨내고 예를 지킨다'라는 뜻이 스며있어서

잠시 인연을 멀리하고 스스로의 다짐을 유도하는 글귀라 생각되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왼편에 있었던 '광영지'는 조상들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어서...

네모난 모양은 땅을, 물속에 떠있는 섬은 하늘을 말한다는데 상징적인 의미로 만들어 놓은 듯하였다.




 또한 정면으로는 서원에서 가장 근사한 만대루가 서있으며 저 멀리 공부하는 '입교당'까지 보였으니 장관이었다.

100일 동안 핀다는 배롱나무가 끝무렵이라 떨어지고 있어서 아쉬웠으나...

시원시원한 나무기둥 하며 위 아래로의 거침없는 행보가 큰 그릇으로 키우는 데 한몫하지 않았나 싶었다.





 유생들이 공부했던 교실이다.

만대루에 200명까지 오를 수 있다 해서 학생들이 많을 것 같았지만 교실이 작아 찾아보니 대체로 20~30명이었다.

현판 양쪽의 작은방들은 오늘날 교무실과 교장실로 쓰였다는데...




 가까이 가보니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라는 뜻의 '입교당'이었다.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병산서원의 중심역할을 하는 곳이리라!



 


 교실 양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마주하며 이 중 동재(사진 왼쪽)가 상급생이 기거하던 곳이다.




 위에서 본 '만대루'는 더욱 기품 있었는데 누마루 출입이 통제되어 아쉬웠다.

행사 때 한자리에 모였던 대강당으로 앞의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며 詩를 짓기도 했을 것이다.

우물마루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양쪽으로 나있었으며 겨울에는 강바람에 추워서 어찌했을꼬?




 교실 뒤쪽에서 내려다 본 넓은 마루와 만대루, 낙동강물도 대문을 지나 저~~ 아래에 보인다.



 

 서원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존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과 셋째 아들인 류진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나는 1598년에 영의정에서 물러났는데 같은 날 아침에 삼도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노량에서 전사했다니,

두 분의 두터운 인연은 거기까지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나고 낙향하여 이곳 서원에서 '징비록'을 쓰셨단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회고록으로 여러 가지 반성과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있음이라!




 사당에 올릴 제사상을 준비했던 전사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주변에 수령이 오래된 배롱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나무만으로도 역사가 느껴졌다.

솟을 대문이 아니어도 이런 대문으로 들어가 살았으면 좋겠네!...^^




 주사(사원을 지키는 사람이 기거하는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잠시 머물렀을 곳이다.




 내려오면서 다시 만대루에 시선을 두었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달을 기다렸던 곳'이라는데 오호~~~ ㅎㅎ

새삼 북 매달려 있는 것도 보이며 멋스럽게 휘어진 나무기둥에 한가했어라!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매미 울어대는 뜨거운 여름날에도 운치 있으리!




 서원을 들어설 때에 건물을 먼저 보게 되어 몰랐으나 서원 앞 정원 또한 단정하니 보기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입구에 있었던 식물로 이렇게 커다란 맨드라미는 처음 보았다 생각했는데...

약용식물로 쓰이며 이름이 '아마란스'란다.




 많은 곳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러 한우 갈비집에 왔다.

요번 여행에 네 번의 별식이 있었는데 가장 맛있게 먹었던 양념갈비살이었다.

밥상에 세 명이 앉았지만 한 분이 고기를 못 먹는다고 해서 둘이서 배춧잎까지 천천히 먹은 다음,




 안동 서후면에 있는 고택 이상루(履霜樓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았다.

어느덧 캄캄해지기 시작하여 집 구경을 할 사이 없이 8명의 여행객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 하고...

우리가 20명 정도라 하룻밤 자는 사람이 많았는데 화장실 가려면 50m의 거리에 씻을 곳은 딱 두 곳이어서,

벌써 줄섰다는 소리가 들리고 한밤중에는 왔다 갔다 하기가 어려운지라 요강을 쓰라며 세 개가 대령하였는데,

그나마 뚜껑이 없어서 방에서 볼일 보고 냄새가 나니 밖으로 내놓으란 말씀에 한숨부터 나왔다...ㅎㅎ



 


 시티 버스 운전하시고 하루 종일 해설사로 열심이셨던 선생님께서는 낮에 보았던 탈춤공연의 탈을 빌려왔다며,

저녁 먹고 왔으니 한가해진 시간이라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비숫한 곳으로 우리를 이끄셨다.

탈 하나 만드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걸리며 값은 80만 원 정도란다. 와우~~~♬

깎고, 말리고, 다듬고, 덧칠하고, 파고, 그림 그리고 ...ㅎㅎ

그중 인상깊었던 왼쪽의 할미탈을 써봤으며 힘없는 사람의 동작이라  한 손은 뒷짐지고 한 손은 둥실둥실 휘저음을 배웠으나

뚫어진 눈이 작아 어떻게 그 큰 무대에서 공간을 활용하며 다녔을까 의문이 생겼다...^^ 




 자기 전 마루에서 탈춤 배웠던 곳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못봤어도 기둥 밑으로 들어오는 문이 만대루와 비슷하였고 북 달려있는 위치며 정면 7칸이라!


 아침에 집 구경을 하기로 하고 모두 다 씻었을까 10시쯤 나가봤더니 욕실이 비어있어서 반가움에 깜짝 놀랐다.

세수만 하려다 느긋하게 머리까지 감고 들어왔는데 시설이 불편하다고 이야기 한 것이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럼, 이런 주택 앞에 현대식 사우나가 있어야겠냐며 마음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ㅎㅎ

덕분에 자다 급해서 한번 들락거렸으나 50m의 거리가 길지 않게 느껴졌으니 벌써 적응되었나?




 2017년  9월 1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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