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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田畓과 99칸의 임청각까지 처분해서 자금을 마련하여
만주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분이란 소식에 감동이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도 나와 친근감이 있었으며 1519년에 지어져서 현재 살림을 하고 있는 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곳으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었는데 서민들이 사는 집처럼 곳곳이 소박하였다.




 집안에 독립운동가가 한분 있어도 영광스러운 일이 건만...

석주 선생을 비롯하여 9명의 독립운동가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니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만 벙긋벙긋 애국하는 사람들을 그 간에 얼마나 봐왔던가!




 99칸이나 되었던 집은 정기를 끊으려는 일본군의 만행으로 행랑채와 부속건물이 뜯겨져 나가며

마당을 관통하는 철길이 놓였다더니 정말 집 앞에 무엇이 길게 이어지고 꽉 막혀있었다.

 '항일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산다'라는 말이 있었듯...

재산을 다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의 삶은 그 후로 파란과 가난의 연속이었으며...

손자 손녀들이 해방 이후에 고아원을 전전했다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라님 납시어 청소를 했을까, 연못을 만든지 오래되어 보였지만 방금 물 채운 듯 어색함이 있었다...^^
선생의 후손들이 일제 치하의 호적을 거부해 국적이 없는 상태에서 타인 명의로 임청각 등기이전을 했다는데,

이 또한 제대로 되돌려 놓아야 할 당연한 숙제일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개인도 얼마나 푸대접을 받을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고택체험처럼 임청각에서도 숙박을 한다니 이곳일까 짐작해보았다.
무관학교와 독립군단을 이끌던 분들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에 곡기를 끊고 머나 먼 중국 서란현에서 가난한 삶을

마감하셨다는데(1932년) 조선이 독립되면 내 유골을 유지에 싸서 조상 발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이 2009년에야 비로소

국적을 찾게 되면서 이루어졌다니 뒤늦게나마 국립현충원에 모시게 됐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바이다.




 임청각 대문을 나오면 이렇게 답답한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다.

일제의 만행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곳이며 철길이 없으면 낙동강이 눈앞에 펼쳐질 텐데 안타까웠다.




 그나저나 거대한 탑이 심상치 않아 바짝 다가가 보았더니...

세상에~~~ 우리나라 국보 16호로 '법흥사지 칠층전탑'이었네!

전탑이라 함은 벽돌로 쌓은 탑을 말하는데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 탑이었던 것이다.




 기단부에 사천왕상과 팔부중상과 12지신상이 양각되어 있다는데 사천왕상은 혹시 왼쪽?...ㅎㅎ

고대 인도 神들의 모습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팔부중상은 투구와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니...

가운데 조각상 같기도 했다. 밖에 있어서 불안하긴 했지만 무거우니까 그냥 둬도 될까?




  법흥사지 칠층석탑 주위에는 임청각과 고택들이 있어서 철길만 없다면 명당으로 보였으나,

현대시설인 방음벽이 바짝 지나 우람해 보이는 탑도 중심을 잃고 어정쩡 서있는 것 같았다.

임청각의 원래 모습을 추진한다니 기차는 이곳을 지나 안동역으로 어떻게 향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탑이 있던 곳에서 몇 m 나와 찻길을 건너니 안동댐이 나와서...

여태껏 한복 입고 옛길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21세기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ㅎㅎ

안동댐은 낮은 곳의 물을 밤에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전기를 많이 쓰는 낮 시간에 생산하는 양수식 발전댐이다.




 물가를 따라 몇 분 달렸을 뿐인데 안동댐 다리 중 하나인 '월영교'가 보였다.

야경이 멋지다 들어서 아쉬웠지만 햇빛이 강했어도 양쪽에 물이 있으니 경치가 좋았다.




 어제 구경하느라고 많이 걸어서 그런가 모두들 이쯤에서 돌아섰는데,




 언제 다시 올지 몰라 정자에 앉아서 배(船)가 다리를 지날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더워서 시원한 무엇이 궁금할 즈음 월영교 앞에서 마를 주성분으로 하는 아이스크림과 참마타리라고...

꿀을 넣어 萬 가닥이 넘는 실타래 속에 고명을 넣어주셨는데 달콤 시원함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인사동에서도 본 듯했으나 먹어본 것은 처음인데 옛날 왕이 드시던 간식이란다.




 점심으로는 '헛제사밥'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 음식처럼 각종 나물을 넣어 비빔을 하고,

무탕국에 부침이나 고기 등 몇 가지를 놋그릇에다 올린 음식이었다. 안동의 또 다른 문화체험이었는데,

맛보다는 어떤 음식일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듯하였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이 '도산서원'이다.

도산이라 하면 문득 안창호 선생님이 떠오르지만 유학의 대학자 퇴계 이황이 유생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안동은 어디를 가나 낙동강으로 인하여 멋진 경치를 연출했는데 이곳도 물이 보여서 낙동강인가 했더니,

낙동강물은 맞으나 댐이 있어서 안동호라 하였다. 병산서원의 구조를 들여다보아서 같은 서원인지라

도산서원의 곳곳이 쉽게 이해될 듯했으나 퇴계 선생님의 심오한 이론은 어찌 풀 것인가!





2017년  9월  18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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