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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닐 때 첫 번째 답사를 왔던 곳이 하회마을로 그때는 상설공연장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탈춤 동작 한 가지를 배우며 몸동작과 장단이 맞아떨어질 때의 짜릿함을 느껴보았는데...

파계승(破戒僧)이나 양반에 대한 비판과 해학을 표현한 탈춤공연도 재밌으니 어서 들어가 보자!




  조금 늦었으나 처음부터 본 셈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무대 위쪽에서 북소리, 장구 소리가 흘러나와 몸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 아이고 신나라!...ㅎㅎㅎ...

탈을 쓰면 누가 누군지를 모르니 염치(廉恥)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워지는 것 같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걱정이다가 결코 넘어지지 않았던 연기가 이어지고...



 

 공연이 끝나 모든 출연진이 나왔는데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라 그런지 구경하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이런 공연을 지켜보며 사이사이에 '덩다귀 덩닥 얼쑤우~~~♬'로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우는 사람들을 볼 때...

감각이 있구나, 풍류를 즐길 줄 아는구나,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일 테지...'하며 보기 좋던데

어깨가 저절로 덩실덩실 해져서 얼쑤우~~~ 몇 번 했더니 앞에 앉은 아저씨가 조용히 보자 하시네?

용기 냈다가 급히 일었던 흥이 식으며 정작 본인은 공연이 끝나지도 않아 나갔으면서 다른 사람의 흥은 왜 깨누?

모조리 본다는 생각을 못하다 재밌어서 끝까지 보았다.




 이제 하회마을로 들어가 볼까?

담벼락에 올망졸망 꽃들 하며 마침 선비들 지나가시니 풍경 좋을 씨구~~~ ♬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가 대대로 살아온 동성마을로 중앙에 커다란 기와집들이 있고...

밖으로는 초가들이 둥그렇게 늘어선 모양이었는데...




 이 집의 담장 바로 왼쪽으로 난 작은 문은 하인들이 드나들던 문으로 사생활을 보호했던 차원인지라,

동학 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하회마을은 양반과 하인과의 마찰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사거리 없이 삼거리로 길을 냈으며 남향만 고집하지 않고 집의 방향을 자유롭게 내어... 

민망하게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하니 배려심이 느껴졌다.




 지체가 높으신 분들의 집은 솟을대문으로 권세를 나타냈다 하는데




 이 집은 화경당(和敬堂)으로 가족과 친족 간에 화목하고 임금과 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단다.

현재 9대손이 명품 고택체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일러가 아닌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는데...

나무가 썩는 것과 벌레 생기는 것도 막을 겸 있는 그대로를 체험해보며 받아들이라는 모습으로 보였다.




 좁지 않은 토담이 정겨웠으며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씩은 있어서 가을이면 붉은 열매 달고 더욱 보기 좋겠다.

어릴 적 우리 집도 감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장독대의 나무는 부실했지만 마당 한쪽에 있는 감나무는

겨우내 채반에 켜켜이 얹어 살짝 얼은 홍시감으로 이른 봄까지 먹었던 추억이 지나갔다.




  집들만 보이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삼신당이라는데 마을을 지켜주며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머니 역할을 하는 나무인가 보다.

하얀 종이에 소원을 빌어 잔뜩 매달아 놓아서 나도 살짝 몇 글자 적어 흔적을 남겼다.




 집 앞에 튼실한 석류를 달고 있었던 곳은...




 

 겸암 유운룡(1539∼1601) 선생의 집으로 '양진당'이라 불리었으며 매우 오래된 풍산유씨 종가였다.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단정했는데 유씨 가문이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라나?

하회마을을 북촌과 남촌으로 나눌 때 북촌을 대표하는 건물이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유운룡의 아버지 호를 빌어 '입암고택'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며,

집으로 오르는 계단이 두 개인 까닭은 아버지와 아들이 오르는 계단이 달라서라고 하셨던가?...ㅎㅎ..

계단 옆으로 낮은 채송화가 옹기종기 피어있어서 보일 듯 말 듯 화사했다.



 

 고택 충효당은 이름 그대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는데,

대청마루가 넓은 사랑채로 명판은 당시 명필가였던 허묵이 썼단다.

저런 글씨는 자연 그대로의 형상을 따라 쓴 글씨체로 전서라 하며 해서나 행서체만 보다 접하니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특히나 이따금 붓글씨를 써보는 나에게도 전서 한번 써보란 암시를 주었다 할까?

집 앞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기증한 나무가 서있었으며 남촌을 대표하는 건물이었다.



 

 충효당(忠孝堂) 대문 건너편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기와집을 연신 보다 초가집을 보니 긴장이 풀리며 왜 이리 편안해지는 것인가!...ㅎㅎ

풍채(風采) 좋은 사자만 구경하다가 순한 양을 대한 듯 호박덩굴이나 풀들이 한껏 자연스러워 보였다.

초가지붕 위에 문필봉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충효당은 분명 명당이었던 곳으로...

서애(西厓) 유성룡의 학덕과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과 문하생들이 지은 종택이었다.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분이 대추가 달다며 등장하셨는데 집들만 있었지 집주인은 처음이라 웃음이 나왔다.

마을을 구경하며 갓을 쓴 선비나 하인만을 떠올려서 다른(?) 모습에 그랬을 것이다.

달달한 대추 한줌 들고 우물우물 마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하나 먹어본단 말을 차마...ㅎㅎ




 마을 서쪽으로 나오니 낙동강가에 소나무들이 수려했다.

'만송정 솔숲'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志氣)가 약하여 보완하기 위해 심은 비보림(裨補林)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지기도 한단다. 산책길이 좋구나!




 솔숲의 좁은 길을 따라가자 떡~~~하니 강변에 드러난 부용대였어라!

조금 전에 올랐던 곳이 이곳이었단 말인가??? 오호~~~ 근사하구나!...ㅎㅎㅎ...

강 건너 오른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용대의 위엄이 한층 느껴질 것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강물과 조화를 이루며 넉넉한 모래사장과 함께 신선이 된 느낌을 주었다.

이 장면 하나로도 안동 여행을 온 보람이 있었다고 할까? 그리던 님을 만난 듯했으니~~~ 얼쑤우~~♬

부용대 허리 부분에는 좁은 층길이 나있어 유씨 형제들이 왕래하며 우애를 다졌다는데 지금도 남아있을까!




 부용대를 구경하고 강가 위로 올라 시원한 나무 터널을 지난 뒤...




 햇살에 한참 무르익을 희망의 논두렁을 지나...


 


 처음 하회마을로 들어섰던 방향으로 나왔다.

좁다란 길 왼편으로 연꽃이 지지 않았다면 연두와 붉은빛이 선명하게 어울리며 달력 그림이었을 텐데...

좁은 길과 녹색의 향연으로도 기가 막혔다...^^*




 2017년  9월  14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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