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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긴 시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래서...

1박을 하자고 했으나 나들이가 많은 철이라 그날 다녀오는 곳으로 정한 후 공주를 택하게 되었다.

버스를 예약했는데 강남 터미널에서 1시간 30분 걸려 생각보다 가까운 공주였다.



 

 점심을 먹고 공산성으로 향하려 했으나 쑥떡을 해왔다기에 가까운 한옥마을에 갔었다.

터미널에서 금강이 흐르는 다리만 건너면 공산성과 한옥마을, 송산리 고분이 모여있었다.

한옥마을은 전통보다는 일종의 숙박시설로 정자에 앉아 쫄깃한 쑥떡으로 반가움과 한가로움을 즐겼는데...

개인적으로 파릇한 수양버들 늘어진 풍경이 가장 좋았다.




 물길을 만들어 놓아 운치를 더했으며 茶 한잔 마시고 공산성으로 향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로 공산성이 언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을까?

갑자기 낯부끄러웠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곳이니 더욱 잘 왔다 싶었다. 그러니까 2015년에 등재되었네!

입장료는 1200원으로 주차장에서 올려본 성곽과 금서루(錦西樓)가 웅장하여 햐~~~ ㅎㅎ




 백제가 서울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후 세운 왕성으로 475년~ 538년까지 64년간 왕도(王都)를 지킨 곳이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해발 110m인 공산(公山)의 능선을 이어 쌓은 천연의 요새라는데...

당시에는 흙과 돌로 쌓았으나 조선시대에 지금의 형태로 되었다 하며 총 길이 2660m로 백제 무왕 31년(630)에

사비의 궁궐을 수리하게 되어 5개월간 왕이 머물렀었고, 660년 멸망기에는 의자왕이 일시적으로 거처했다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이괄의 난(1624)이 일어나 인조가 이 城으로 피난하였다니.. 그랬었구나!




 위풍당당 금서루(錦西樓)에 올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1993년 복원되었고 주말에는 수문병의 교대식이 시간마다 있단다.

숭례문 통과할 때와 비슷한 천장의 무늬와 묵중(默重)함이 느껴지며 백제인이 아니라도 시원하고 좋았어라!


 


 성 안으로 들어오니 튼실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이 어우러져 멋스러웠는데 백제가 웅진성에서 오래 버티질 못하고

64년 동안 통치하다 사비로 물러날 때 임금과 백성들이 안타까워 땅을 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넓은 길 위쪽으로 오르자...




 고목나무 아래로 활 쏘는 터가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이 활을 쏘고 있었다.

금서루 주변에는 당시의 의복(衣服)을 입어보는 등 백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하다니,

어린이들을 데려와도 좋을 듯했다.


 


 이곳에 와서 또한 신선하게 느낀 점이 곳곳에 설명을 잘 해놓아 읽고 싶게끔 만들어놓은 점이었다.

있었던 사건이나 얽힌 이야기들을 가볍게 동화처럼 써 놓아 정성이 보였고 대우를 받는 듯했다.

고려 현종이 나주로 피난 가며 공산성에 들렀다 수도가 있던 개경으로 환궁하며 다시 6일간 공산성에 머물렀는데,

공주 절도사였던 아비가 세 딸을 왕비로 보냈다 해서 활들 짝 놀라 이야기꽃을 피웠다.

당시에 딸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아버지의 꿈이었을까? 평생 궁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 딸들은 늙어갈 텐데

분명 담장 넘어 임금이 언제 오시나 목을 내밀다 능소화(?)가 되었을 것이라 상상하였다.




 뭣도 모르고 넓은 길로만 가다가 쌍수정이란 건물이 나와 방향을 바꾸었다.

이곳이 바로 인조가 이괄의 난(1624년)을 피해 머물렀던 것을 기념(?) 하여 만든 곳이라 한다.

난(亂)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에 기뻐서 자신이 기대었던 두 그루의 나무에 '통훈대부(通訓大夫)'란 벼슬을 내리고 

쌍수(雙樹)가 있었던 자리에다 영조 10년(1734)에 쌍수정을 지었다니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인조는 그렇게 피난만 다니다 세월 보냈겠구나! 피난간 것을 기념하다니?


 친구들이 앞장서고 난 뒤에 따라가고...^^




 쌍수정을 지나자 좁다란 성곽 길을 걸을 수 있어서 기분이 한층 좋았다.

적당한 햇살과 산 그늘이 걷기를 즐기는 우리들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성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서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며 본 공주의 모습이다.

토요일인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없이 성곽 안이나 밖이 느긋하며 한산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에 도착했다.

성벽을 타고 가면 그냥 기와지붕 밑으로 지나치기 때문에 진남루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어 잠시 아래로 내려왔는데,

남한산성이나 문수산성의 몇 군데 밖에 못 가봤지만 이곳만큼 성문마다 아름다운 곳을 못 보았다.

진남루 땅 밑에서 시루떡 마냥 겹겹이 쌓인 당시의 토성이 467m 가량 발견되었단다.


 


 서울에서 버스를 탈 때만 해도 먼지 걱정이 있었으나 공기가 맑아 다행이었고...

걷기 좋아하는 친구들만 와서 산책길이 좋다며 연신 감탄을 했다.

이곳부터는 경사가 제법 높아지는 계단이었는데...




 어렵지 않게 영동루(迎東樓)에 도착하여 잠시 달달한 사탕을 입에 넣고 쉬던 중...

앞으로 우리나라 城들을 모조리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의견이 나왔다.

걸으며 햇볕 쬐자고 바지들을 걷고...ㅎㅎ...




 경사가 계속 급해지며 그늘이 없는 곳은 뜨거웠다.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라 한다.

바탕색인 황색은 백제의 색이며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하였다는데

동쪽이니 청룡(靑龍)의 모습이 그려진 게 아닐까?




 땀이 나고 얼굴이 벌겋게 된 구간이다.




 계속 성벽을 따라가다 언덕 위에 건물에 있어 앞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친구들을 불렀더니,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500)에 지었다는 임류각(臨流閣) 이었다.

임류각이란 '흐르는 물을 내려다본다'라는 뜻으로 신하들과의 연회 장소로 쓰였다 하며...

갈수록 동성왕의 풍류가 지나쳐 신하들이 걱정한 곳이기도 했다. 금강이 보일까 2층에 올라가 봤더니,




 나무가 빽빽하여 강물은 언덕 아래 눈곱만치 보이고 임류각 2층 분위기가 으시시해 얼른 내려왔다.

산책하며 구경까지 하는 나는 재밌었는데 쑥떡만 먹고 출발해서 친구들 배고팠을까?

떡은 균등하게 먹었지만 말이다...ㅎㅎ..

성벽을 따라 한 시간이면 된다더니 쉬엄쉬엄 걸어서 2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2018년 6월 14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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