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오기 전에 솜 틀기를 하였다. 요가 납작해지고 몸무게는 늘어나는데... 솜이불이 점점 무겁게 느껴져 커다란 숙제였다. 어디서 하는지도 모르겠고, 요즘 솜 틀기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던져놓고 간 명함이 현관 앞에 떨어져서 무척 반가웠다. 내내 갖고 있다가 알맞은 시절이다 싶어 전화를 해보았다. 솜 트는 집이라며 아줌마가 받아 기뻤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방문시간 약속을 하고, 어떤 상태로 솜을 놔둬야 하냐고 여쭈니 그냥 쓰던 그대로 두란다. 실어 간다니까 부담이 적었는데 이불장을 보여주기는 부끄러워서 솜이 들어 있는 것은 모조리 마루에 꺼내놓았다. 솜이불이 두꺼워 버리려고 한 것도 못 버리고 이참에 상담했더니 이불 3채가 나온다네? 와아~~~ ^^ 이불보도 직접 만든다며 요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모습으로 흔하지 않은 색으로 구성되어 분위기가 편안하고 묘했다. 오르자마자 '복원전시실'이 있었다. 당시에 수집된 건축재와 시공기술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복원과 활용의 사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데 전시회도 즐거웠지만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 목구조 벽체는 두 공간 사이의 칸막이벽으로 그 자체가 근사한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앙증맞았던 창틀의 모습. 옛 서울역사는 전통적인 붉은 벽돌구조에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철근 콘크리트구조와 철골구조 외에 석재를 구조체의 일부로 혼용한 건축물이다. 외부의 장대석을 받치고 있는 석재. 목재 부조 장식으로 천정 우물 반자나 커튼 박스, 벽체등에 사용된 장식무늬들을 따로 정리한 모습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복원전시실 앞..
옛 서울역은 사적 284호라 문화역 서울 284였다. 1900년 7월 8일 서울~ 인천간 경인선을 첫 개통하였고 당시에 서울역이 아닌 남대문역이었으며 이후에 경성역으로 바뀌었다가 1947년에 서울역이 되었단다. 시계를 구경해 보시라! 현관에 들어서자 작품들에 환한 분위기였다. 신청사는 세련미가 있으며 일종의 경제활동하는 곳이라 여겨지지만 옛 서울역은 분위기가 은은하고 고풍스러워 누구라도 구경했으면 하는 곳이다. 굵은 기둥에 받쳐져 천장이 높았다. 역사 바로 안쪽에도 똑같은 시계가 있는데 '파발마'(역참을 달리던 역마)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1926년에 설치되었고 지름이 160cm로 한국전쟁 당시에 해체되어 피난을 갔다 와서 단 3개월만 멈췄다 한다. 단청을 그린 의자와 섬유를 이용한 커다란 작품들이 복..
"일주일 후에 제사가 있으니 그때나 오너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뵙지 않으면 섭섭할 것 같아 은행에 들러 예전에 살 던 곳으로 향했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추어탕집이 있어서다. 한 김 식힌 추어탕을 얇은 비닐그릇에 담아주었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언뜻 내려다보니 그릇이 일그러져 그냥 들고 갈까 하다 불안하여 가방에 넣으려는데 사과와 참외를 위에 얹기가 조심스러웠다. 열기에 삶아지면 어쩌나 염려되었고 탕을 덮은 비닐이 더위에 점점 부풀어 올라 과일 무게 때문에 터질까 싶었다. 다행히 지하철에서 앉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릎이 따스해서 좋더니만 마스크도 썼겠다 갈수록 따땃해지다가 덥기 시작했는데 음식이라 바닥에 내려놓기는 뭐해서 땀 몇 줄기 흘리며 찜질방 체험을 한 셈이지만 버스로..
드론 라이트쇼를 한다니 보러 가고 싶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신비스럽고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 시간이라 이를 어쩐담? 밤에 해야 보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 보니 밖에 나와있다며, 만나서 저녁을 먹고 뚝섬으로 보러 가자는데 이때가 오후 5시쯤이었다. 저녁을 편안하게 초월할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쉬는 날이라 눈치가 보이고, 드론쇼 보러 간다고 철없어 보이는 누구는 안되고 싶어서... 괜히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 ㅎㅎ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니 마트에 다녀와 일찍 저녁준비를 하며 망설이는 사이에 다시 연락이 왔지만 시간 끌기도 미안하고 자신이 없어 못 가겠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이럴 땐 자유부인이 부럽다.^^ 가도 뭐라 하진 않지만 불편한 것이다. 드론 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