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들고 갈까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무거울 것 같아 그냥 나갔다. 비가 와도 안전한 곳은 운동장이지만 평지는 역시 걷는 재미가 덜해서 숲으로 들어갔다. 여차하면 가까운 정자(亭子)로 피할 수 있어도 둘레길을 한 바퀴 돌려면 정자에서 멀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방향을 바꿀까... 그냥 앞으로 향할까 마음속은 생각 중이었어도 발은 앞으로 향하고 있어 걸어가며 기도를 했다. '정자까지 가는데 2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조금만 참아주시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겠습니다.' 처음에는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나 싶었는데 정자에 도착하기 5분 전쯤 후드득하다가 쏴아! 걷다가 급해져 달리기 시작했다. 모자를 써서 그나마 덜 젖었는데 이미 정자 주변에는 아저씨 두 분이 서 있었고 연세 있으..
비가 오기 전 구름이 잔뜩 꼈다. 아침 9시경 동쪽 하늘로 이런 구름은 드물기에 집안 일 하면서 계속 지켜보는 날이 되었다. 주위에 건물이 없어 훤히 보이면 좋겠지만 집에서 보는 나의 하늘 크기는 항상 요만큼으로 청정한 날 별 8개의 만남이 여태껏 최고다. 청소를 마칠 때쯤 구름이 동쪽으로 흘러가 해무리를 달고 방긋 해가 드러났다. 아무것도 없는 파란 하늘은 해맑아도 공허해서 뭉게구름 아닐지언정 떠다니는 구름이라 덜 심심하니 보기 좋았다. 변화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낮시간을 보내고 문득 저녁 하늘을 봤을 때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며 건물들 환하게 비추고 분홍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서쪽하늘은? 부엌 쪽 창으로 얼굴을 돌리자 우와~~~ 구름은 여전했으나 노을이 근사하게 펼..
'철골소심'이라 알고 있는 난蘭 화분이... (블로그 친구분이 알려주셨음) 올해로 가장 많은 싹을 틔웠다. 20년은 족히 넘었으나 분갈이 한 번을 못 해줘서 영양이 하나도 없을 텐데 동글동글한 돌이나 나무껍질로 다시 심어주면 될 테지만 경험이 없어 모조리 쏟아 뿌리를 대하는 것도 큰일이고 귀찮으며 겁이 나는 것이다. 보다 못해 몇 년 전 퇴비라도 얹어주었다. 핼쑥하여 무엇이든 먹고 힘내라는 뜻이었지만 공기 잘 통하라고 물 잘 빠지라 돌에다 심어주기에 흙을 얹어 숨 가빠졌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원래 잎이 길어서 자리차지에 묶어주기도 했는데 철사처럼 강하고 단단한 새싹들 나왔다고 어느 날 갑자기 난생처음 20년 역사의 잎들을 미련 없이 싹둑 잘라 새로 나온 싹들만 남게 해 주었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는 잘 ..
숲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연이어 비가 와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비 그치자 매미들 마음이 급해진 것 같았다. 하루 차이로 많은 우화껍질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참나무에 다닥다닥 껍질이 붙어 있는 것을 본 후 소나무,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사방오리나무, 잣나무 등에는 흔적이 없었는데... 다음날은 어떤 나무에도 매달려있으며 우화껍질이 겁나게 많아져서 숲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플라타너스에 매달린 우화껍질! 암매미가 나무껍질을 뚫고 알을 낳으면, 나무속에서 약 1년간 있다가 다음 해 여름에 부화되어 애벌레는 바로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고 3~17년까지 자라는데 폭우가 연이어 오면 매미의 약충이 생존하기 힘들어서 올여름에는 성충이 적을 것이라 예상하더니 비 그친 후 하루가..
바이올렛 하나 갖고도 소설을 쓰겠다.^^ 친구가 바이올렛 나눔 한 것이 몇 년 됐을 것이다.(1대) 보랏빛 꽃을 피우는 우리 집의 첫 작은 화분으로 잎이 자라자 몇 개를 잘라 물꽂이를 했다. 이 때만 해도 번식에 성공하고 싶었다. 여섯 뿌리가 살아남았다.(2대) 다들 여리게 보이나 가운데 짙은 색이 3대의 엄마다. 각각 다른 화분에서 기생하다가 아파트에서 금전수 분갈이를 해보며 버려지는 모종 비닐화분을 6개 챙겨 와 비로소 옮겨 심어주었다. 같은 엄마에서 태어났어도 얼굴이 각각 다른 것처럼 약한 아이가 있고 연한 빛을 띠는 아이도 있었는데, 2대에서 가운데에 놓인 이 아이는 잎이 진하며 성장이 빨라 이미 꽃을 한번 피웠으며 작년 가을에 8개 정도의 잎을 따서 물에 꽂아놨었다. 번식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