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오는 계단 너머로 붉나무가 튼실하게 자라고 있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가보니 계단 가까이에 있던 2m 크기의 나무가 거칠게 잘라져 있었다. 피해를 주지 않는 거리였는데 왜 그랬을까! 올 겨울까지만이라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갑작스러워 놀라기도 했다. 할 수 없이 잘라진 나무에서 몇 미터 떨어진 붉나무를 눈여겨봤는데 자세하지 않아 확대했더니 꼭 유화를 그린 것처럼 사진이 나왔다. 위로 꼿꼿하게 자란 꽃대에 언제 꽃이 피려나 들여다봐도 꽃대에 변화가 없어 보였다. 그럴리가 있을까, 열매가 보여 찾아봤더니 다양한 색상의 귀티 나는 작은 꽃이 피었다. 상상해보건대 열매의 수만큼 피었으리라! 꼿꼿했던 꽃대가 수숫대처럼 무게에 아래로 수그러졌다. 화전민들은 저 열매..
팥배나무 군락지가 여러 곳 있다. 열매는 팥을 닮았고 꽃은 하얀 배꽃을 닮아 팥배나무라 부른다는데 배나무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마가목과 비슷한 나무로 봐야 한단다. 덜꿩나무일까 팥배나무일까 혼자서 찾아보고 팥배나무에 가깝다 했을 때 공식적인 나무 이름이 붙어 팥배가 확실해져서 기뻤다. 꽃이 귀엽고 예쁘지만 여러 꽃들이 피는 계절이라 주목받지 못하다 진노랑과 주홍빛의 줄무늬가 있는 단풍잎과 붉은 열매가 아름다워 눈에 띄는 나무다. 꽃이 한 줄기에서 뻗어 올망졸망 달리는 것처럼 열매도 꽃이 진 자리에 그대로 5~ 6개 매달리며 팥알처럼 단단했던 열매가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숙성이 되어 신맛 단맛과 함께 물러지는데... 참새들이 바글바글 앉아 먹는 모습에 지나다 몇 개 따먹어보면 갈증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
혜화동 대학로에서 사는 젊은 친구 덕분에 서울문화재단을 방문하게 되었다. 11시에 공연이 있다 해서 무조건 간다고 했다. 어떤 가수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사람들이 많을까 앉아서 보려고 10시에 만나서 걸어가다가 근사한 문화재단 건물을 만났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다녀봐야 자꾸 정보를 알게 된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마다 공연을 해왔다는데 오전 11시에 하니까 '스테이지 11' 인가 보았다. 가까이 오자 연습을 하는지 조금은 재즈풍의 연주가 들려와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얼른 마주하고 싶었다. [서울 스테이지 11]의 오늘 공연 가수는 백현진이었다. 노래를 들어본 적 없고 배우이기도 하다는데 제목이 사자티셔츠, 빛, 노루, 고속도로 등 독특하였다. 미리 공연장소를 엿보고, 등장인물들을 보며 2층으로 올라..
모감주 열매는 염주나 목걸이가 될 수 있다고 해서 몇 년 전 만들어놓은 게 있었다. 가장 질긴 실을 생각한 것이 치실이어서...ㅎㅎ 치실로 묶어만 놓고 활용도가 없었는데... 그동안 열매가 더 마르긴 했어도 봐줄 만해서 며칠 전 주얼리 공방을 지나며 재료상을 만나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여쭈었더니... 그분들도 금속이나 보석만 접했지 이런 자연적인 보석(?)은 처음이고 소량이라 선뜻 재료를 권하지 못해서 낚싯줄만 사 갖고 왔다. 치실로 꿰맨 열매를 하나씩 빼서 낚싯줄로 엮었는데 애초에 바늘이 들어간 구멍은 크고 바늘이 나온 곳은 거의 흔적이 없어 한 알씩 바늘로 낚싯줄이 들어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야만 했다 이 게 뭐라고 하면서 눈이 엄청 피로했지만... ㅎㅎ 끝을 보고자 쓸모 없어진 알맹이 몇 개..
이따금 이름이 뭐였는지 생각하다... 며칠 전 우진이라는 이름이 떠올려졌다. 오래전 일이라 가물거리지만 맞을 듯싶다. 공부방을 하면서 연필을 한 아름 깎아놓고 지낸 시절이 있었다. 필통이 가지런한 아이는 드물어 부러진 채로 오면 깎아주었고, 춥고 더운 날에는 돌려보내기가 뭐해 빌려주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은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성의 없이 공부하러 온 것이며... 이것도 나름 공부라 생각했다. 하루는 우진이가 연필을 가져오지 않아 집에 다녀오너라 했더니 돌아오자마자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 시간 이후로 오지 않겠다는 뜻이고 내 마음과는 달리 화가 나셨던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들이 둘러앉아 공부를 하던 중이라 뜻을 전할 새도 없이 헤어졌는데, 끝나고 나서라도 전화로 풀었으면 좋았겠지만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