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서 여러 가지 꽃을 봤지만 꽃보다도 이런 모습이 재밌고 신기하였다. 그냥 잎이 기다랗게 올라가도 싱그럽게 보일 텐데 댕댕이 무늬가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저리 점을 기하학적 무늬로 찍을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라 할 수밖에 없다. 잔고사리과 '다시마일엽초'의 모습이다.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은 씨앗이 아닌 포자로 번식하는데 동그라미 무리는 바로 포자낭군이다. *포자(胞子): 막에 싸인 자손으로 우리말로 홀씨! *포자낭(胞子囊):포자가 들어 있는 주머니. *포자낭군(胞子囊群): 포자주머니가 모여있는 무리. 그러니까 잎 뒤에서 보이는 동그라미 하나는 포자낭으로 그 안에 수많은 포자가 들어있으며 동그라미가 무리 지어 포자낭군을 이룬 모습이다. 이 식물도 혹시 고사리 종류일까? 다른 모양의 포자낭..
조기 3마리가 우리 집에 전해졌다. 작은 올케의 여동생(사돈처자)이 보낸 것이다. 얼굴도 못 본 사이인데 이를 어쩌나! 다듬으려니 비늘은 이미 제거되어서 칼집만 넣었다. 올케네는 딸이 네 명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우애(友愛)가 좋다. 사돈어른께서 남기고 가신 500여 평의 밭에 주말이면 부부끼리 모여서 봄부터 가을까지 함께 농사를 짓고 농막에서 하룻밤 모닥불 피우는 낭만에 자는 날도 있으며 먹고 싶은 음식들 그날그날 준비하여 사부인을 모시고 빙 둘러서 만들어 먹는단다. 우리 집 올케는 그중 둘째 딸이고, 자매들은 애경사(哀慶事)가 있으면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어울린다는데 가끔 사돈처자인 넷째 따님이 우리 친정집과 가까이 산다고 다녀가 놀라움과 반성, 감동이 일어나곤 한다. 얼마 전에는 현관..
어릴 적 집에 감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장독대옆, 아래채 부엌 앞, 그리고 뒤깐 옆! 대봉감은 아니었지만 모양이 동글지 않고 약간 네모 난 감이었는데 가을이면 넓은 인삼채반에 켜켜이 올려 뒤꼍으로 가는 모퉁이 창고에 보관했었다. 나무판자를 위에서 하나씩 틈으로 내려야 닫아지는 창고의 문은 지금 생각하면 불편했을 텐데 겉에서 보기에는 판자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보이므로 나름 멋스러웠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홍시감이 되었을까! 어느 날 판자들을 들어 올려 꺼낼 즈음엔 키에 맞게 높낮이가 되어야 비로소 감들이 보였고 이미 뭉그러져 흘러내리는 것, 여전히 딱딱한 것, 알맞게 익은 감이 있어서 골라골라 그릇에 가득 담아 내왔었다. 간식이 없던 시절이지만 형제들은 물크덩한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
단풍이 한창일 때 비가 두 차례 왔었다. 먼지를 재울 만큼이었는데 바람이 함께 하자 잎들이 쏟아져 나름 장관이었다. 단풍나무는 기운 떨어지지 않고 한참이어서 비가 왔어도 단지 세수를 한 모습이라 선명하여 늦가을을 장식할 만했다. 큰 가지를 넣었더니 빨간 단풍이 더욱 멋스럽다. 자세히 보면 색이 참 다양하였다. 맨손으로 다니다 놓치고 싶지 않으면 가방에 귤 하나와 핸드폰을 챙겨서 올라본다. 여러 날 흐림이라 햇빛이 아쉽기는 했다.^^ 올가을에는 세 번을 들고나갔는데... 한 번은 운동장을 담았으니 단풍을 담기는 두 번으로 서로 시차가 있어서 많은 잎들이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씩씩한 플라타너스! 향기롭지 않다에 걸려 넘어진 은행나무와 더불어 잎이 크게 굴러다닌다며 도로 청소 어려움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는데 ..
운동장의 위치가 높아서 계단을 오르며... 어떻게 변했을지 두근두근하였다. 월드컵 기간이라 주인공인 축구장이 더욱 궁금하였고 게이트볼장과 밥 나누는 곳을 빼고는 모조리 바뀌어있었다. 잔디구장이 만들어지기까지 반대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다. 흙을 밟다가 인조 잔디로 바뀌며 출입이 통제된다는 소리에 나 또한 반대 서명을 했었는데 화단이나 조금이라도 올라온 부분은 전부 밀고서 새롭게 태어나 간결한 듯 넓고 깨끗하였다. 햇살 좋은 위치에 있던 농구장과 주말마다 사람들이 가장 붐볐던 족구장은 서쪽으로 밀려나 족구를 즐기시던 분들은 공간이 좁아져 서운해할 것도 같았다.^^ 족구장이 체계적으로 운영됐었고... 대회를 열며 옷 갈아입을(?) 공간이 있었는데 새롭게 마련할 땅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근처의 중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