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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평산 2014. 9. 25. 16:13

 

 "술 다 마셨니?"

 "나머지도 가져가거라!"

 

 추석날 설거지가 끝나고 과일을 깎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두어 해 전에도 페트병으로 가득 보내주셨는데...

술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생선요리나 멸치국물 낼 때 사용했었다.

술맛이 궁금했으면 맛을 봤겠지만 그냥 포도주려니 생각하고는...

뒤꼍에 놔두며 고기 삶을 때도 조금씩 넣고는 했다.

요번에는 반쯤 담긴 병째 가져가라하셔서 지난번에 반절을 보내시고 나머지겠구나!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40년 된 술이야!"

 "앗! 그렇게 오래요? 무엇으로 담그셨어요?"

포도는 기본이고 이러저러 과일이 들어갔다며 가져가기 전에 맛이나 한번 보자고 하셨다.

 

 어머니와 술을 같이 마셔보는 것도 시집 와서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플라스틱병에 들어있던 술은 전혀 마셔보고 싶지 않더니...

맑은 유리병에 투명하게 담겨있으며 무려 40년이 됐다고 하니까 구미(口味)가 확 당겼다.

제대로 된 술잔 두 개를 준비해서 국자로 어머니와 한 잔씩 뜨고는...

 '꾸울~ 꺼억~~~'

 

 

 

 

 "햐, 맛 좋은데요?"

 어머니 앞이라고 호들갑이 아니었다.

도수는 맥주보다 조금 높은 듯했으며 쓴맛은 전혀 없었고 달콤하니 짜릿했다.

술이 아니고 그냥 주스 같기도 했는데 더 마시고 싶은 유혹이 있었다할까?

 

 허나, 언제부턴가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알레르기가 일어나서 마실 생각을 못한다.

모임에 가서도 물을 따라놓고 건배하는 실정이라서...

조금 후에 얼굴이 근질근질하며 무슨 반응이 오겠지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한잔이라서 그런가.....?

오랜 시간이 지난 술이라 그런가...

설탕만 넣으셨으니 그럴까!

 

 다행이라 여기며 신줏단지 모시듯 안고와 40년 된 술병 주위를 요모조모 살펴보니,

플라스틱 뚜껑의 색이 조금 바랜 것 이외에는 곰팡이 하나 보이지 않아 신통하기도 했다.

맛이 훌륭해서 하루에 한 잔씩 마주칠 때마다 마셨는데 이제껏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보통 술이 아니라 그런가, 신기하네...ㅎㅎㅎ'

 '반찬 할 때도 아끼며 먹어봐야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잊지 않고 40년 된 보약 한잔 홀짝 마셨다.

 '이거, 혼자 마셔서 어쩌나, 좋은 것은 나눠야하는디 말여!'

 

 

 

 

 2014년  9월  25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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