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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큰아버지께 카드를 보낸다.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에 친정 부모님께는 보내지 않아도 20년은 되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정신 차려서 보내려고 집에 카드가 있어 사연을 쓰고는 봉투를 찾았는데 없었다.

아마 주소를 쓰다가 틀린 적이 있어 모자라는 것일 게다.

그리하여 켄트지에 대충 전개도를 그리고 봉투를 만들어보기도 했으나 규격봉투가 아니니...

혹시 기쁜 사연을 보내고 실례가 될 수도 있어 봉투를 사러 나갔다.

하지만 카드 봉투만은 어느 곳에도 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새롭게 카드를 사는 수 밖에 없다며 대형마트에 갔는데...

비싸기도 하고 어르신께 보내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망설이다 결국 일반적인 편지봉투만 사오고 말았다.

그림이 없어 섭섭한 대신 사연을 길게 써서 위안을 삼아보기로 한 것이다.

 

 늦어서 연말에나 들어가겠다며 마무리를 짓고 시간 여유가 있어 대나무 그리기를 연습하는데...

 '아참, 대나무 그린 한지에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생각은 티끌만큼도 못했으나...

정성이면 어디든 통하는 것이어서 연습해보니 그럴듯하여 편지지에 쓴 것을 모조리 옮기고,

혼자서 선비가 된 냥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작은 붓으로 글씨도 썼으면 더 좋았겠지만 한글은 안 써봤으니 사인펜으로 대신했다.

 

 대나무 밑동이 자연스럽지 않고 잎이 제대로 피지 않았지만 어떠랴!

자그마한 내 시선으로도 고칠 곳이 여기저기 보였으나 얼른 해보고 싶어 서둘렀다.

여백(餘白)이 있는 넓은 공간에 글씨를 세로로 써 내려가니 여태껏 본 어떤 카드 보다도 아름다웠다.

이제 다섯 번 가서 배우고 왔는데 화가(畵家)가 그린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세로로 여덟 번을 접고 다시 반을 접어 편지봉투에 넣으니 폭신하게 꽉 차면서...

묵향(墨香)이 세어 나오고 과거를 보러가는 풍경도 스치고...

임금님이 내린 임명장 교지(敎旨)를 펼치고 감정을 억제하며 읽는 장면도 떠올려지고...

18세기쯤 도령님에게 몰래 사랑의 편지를 쓴 느낌도 있었다 할까?  

기분이 좋아 내친김에 친정부모님께도 쓰고 근하신년(謹賀新年)도 써보았다.

부지런히 배워서 내년에는 좀 더 그럴 듯하게 그려봐야지!

이제 카드 사는 일은 없을 거야.

 "받고 싶은 사람?"...ㅎㅎㅎ...

새해 복(福) 많이 받으시고 날마다 행복(福)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4년  12월  27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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