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거의 생활하시니 정작 집에는 반찬이 없으셨고 가스 배달이 늦어지는 바람에 찌개를 끓일 수도 없었다. 어느 덧 9시가 되니 내일 하자며 안방은 소독하는 차원에서 약을 흠씬 뿌린 후 문을 닫고는 마루에서 엄마랑 자기로 하고 두터운 전기요에 이불을 폈다. 이사 오면 씻기가 불편할까봐 어제 저녁에 깨끗하게 씻었다는 엄마가 고양이 세수를 하시길 레 이사 와서 먼지가 얼만데 엄마? 공주라며 놀려드리고...ㅎㅎ
난 연신 걸레질에 땀을 흘렸으니 기어코 쫄쫄쫄 흐르는 물에 헹굼을 한 건지 만건지도 모르겠는 샤워기로 피로를 날린 후 시집가서 처음으로 엄마 옆에 누웠다. 따뜻해서 좋았다. 그동안 가까이 살아서 하룻밤을 잘 필요조차 없었는데 이사 가시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것이 낯선 곳이지만 포근했다. 밤 10시도 안됐는데 잠이 오겠는가! 하지만 불을 켜 놓으니 눈이 부셔서 일단 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와서 엄마와 떨어졌었다.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 옆에 누운 것이다. 엄마가 추울까봐 자꾸만 이불을 덮어주셨다. 한참 이야기 하다 언뜻 잠이 들었나? 새벽 3시쯤 일어나셔서 왔다 갔다 하신다. 주무실 때 습관이시라는데 엄마 심심할까봐 다시 도란도란하다 5시쯤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아직도 6시쯤인데 아버지께서 주무시던 방에 불이 켜져 있어...속으로 친정이지만 딸 재우려고 일어나 무엇을 정리하시고 싶어도 불편하지나 않으실지 하여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엄마는 다시 주무실 예정이라고 계속 누우라고 했지만 이왕에 하룻밤이며 사실 도와드린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가 맞는 상황이어서 가구들 배치를 돕고 책 정리에 아버지께서 시장하시다니 아직 가스가 연결 되지 않아 전기를 사용하는 요리 기구를 찾아서 고기를 구웠다. 두 분 다 깊이 있게 주무시지 못하니 심란했다고 할까?
오후 4시경, 집에도 가야하고 정리하다 나온 오래된 곡식들, 고춧잎 말린 것, 며늘이 사다주었던 마 가루 등등 ...아끼다 못 드셔서 벌레 난 것들을 작은 밭에다 거름으로 주신다하여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아버지 일터에 날라드릴 겸 집을 나섰다. 계단을 오르실 때 불편해하셔서 여태껏 쭈그리고 일하셨으니까 천천히 걸으면 오히려 다리와 허리운동도 될 것이라 걸어가자고 말씀 드렸던 것이다.
"아버지, 일을 너무 심하게 하시니 다리가 불편하시지요, 몸을 아끼셔야 합니다."
"그래, 85세까지는 일을 한다고 내다보는데...
쉬어줘야겠지?"
오전 중 일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상속에 대해 언뜻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셔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지만...이런 이야기 또한 헤어지기 전에 마음에 걸려서 신경 쓰지 마시라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네 이야기가 옳다며 동조해주셨는데 그런 것을 내다보고 도와드렸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일터에 도착해보니 두 달 사이에 새롭게 길이 나고 주차장이 생기며 아버지 농사짓는 땅은 몇 평으로 좁아들었지만 침침했던 주위가 깨끗하게 정리 되어 아버지 건물은 더욱 살아나있었다. 김장에 보태 쓰라며 무 한 뿌리를 쑤욱 뽑아주셨는데 그 무로 김치를 담가서 그런 가 달콤하면서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중심을 갖고 살아오셨으니 모든 일이 잘되리라 믿는다.
2015년 11월 21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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