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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비는 오는데...

평산 2015. 11. 21. 12:25

 

 친정 부모님께서 이사를 가셨다. 사시던 집은 재개발이 진행되어 내년이면 입주하라는 소식이 들릴 텐데 그 사이 잠깐 나가서 사신 집이 전세가 1억 하고도 2000만원이 올랐기 때문이다.

 

 해마다 짓는 집들이 그렇게 많은데 전세가격이 2년 만에 그렇게 오르다니 돈이 있으면 야 걱정 없으시겠지만 당신 집으로 들어가려해도 이사가 힘드실 연세에 그 것도 아닌 같은 돈으로 평수를 낮추어 가려해도 갈 곳이 없어 자식으로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

 

 '이넘의 나라가 미친 것은 아닌지...'

날짜는 다가오고 하루 종일 집을 얻으러 다녔지만 그 돈으로는 헛고생에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일하시는 근처에 전원주택이 나왔다하여 좋을 듯싶었지만 막상 가보니 집은 좋았으나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정도 오는 곳에다 산골이라 운전을 해야만 하는 위치여서 포기하시고...

 

 다음날 자그마한 지역광고를 보셨는지 더 이상 집 보러 다니시는 것도 고생이고 알맞는 집도 없으니 계약하셔야겠다며 연락이 왔을 때 당장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집인데 전세가가 기존의 1/4 밖에 안될까? 얼마나 형편없을 것인가! 겨울에는 바닷바람이 불어와 얼마나 추울까를 상상하며 주소를 치고 지도를 찾아보니 연립주택이 밭두렁에 덜렁 놓여있어서 우우~~~

 

 아버지는 괜찮다하셨다. 일터에서 가까운 장점도 있으시다며 나머지 돈도 활용할 수있다 하시고 걱정 말라시는데 말년에 무슨 고생이신가! 아무쪼록 오래 사셔야 한다며 이사날짜가 다가왔는데...

 

 하필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난 이사 가실 집으로 직접 가기로 되어 있어서 도중에 시장을 보고 두 시간이 넘어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아버지께서는 그 와중에 우산도 쓰지 않으시고 동네 어귀 수양버들 아래로 마중을 나오셨는데 우산이 이삿짐 어디로 들어갔을지 정신없으셨겠지만 조그마한 체구에 비를 맞고 계시니 얼마나 초라해보이시는지 아버지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하시던 일을 그만 두시면 자식들 가까이서 걱정 없이 사셔도 되실 텐데 우리 아버지는 푸른 잎들 보며 채소 가꾸는 것을 좋아하시고 서울에서는 답답하셔서 며칠 못 계시니 일을 하시는 동안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이 더 나으셨을까!

 

 우산을 같이 쓰고 시골길을 걸어 허름해 보이는 벽돌집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집은 환했다. 이삿짐들이 늘어져있어서 그렇지 벽지도 싱크대도 불빛도 환해서 우중충하지 않았다. 문득 내려다 본 창밖은 배추가 졸졸졸 심어져 있어 정다움에 웃음이 나왔다. 확장형 새 아파트에서 화분에 물을 준 것이 새서 마루바닥을 썩게 하는 바람에 몇 십 만원을 물어주고 나오셨기에 타일로 이루어진 베란다도 있어 좋았다. 다만 수돗물이 아니라 지하수를 써야하며 화장실이 불편하실 듯했다. 거리가 있다고 전세값이 싼 거였구나!

 

 이삿짐들은 비를 맞아서 마른 걸레로 닦으며 들이고 포장이사지만 드레스실에 있던 옷은 어디에 놓냐며 공간이 다르니 질문만 하다가 그들은 돌아갔다. 걸레질을 수도 없이 했다. 난방은 기름보일러로 한겨울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틀어놓았더니 훈훈해서 이런 저런 속상함도 잊었다.

 

 엄마는 몸이 약하시고 골다공증도 심해서 잘못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라 딸들이 정리를 도와드려야 한다. 날이 어두워져 동생부부는 떠난다는데 같이 묻어가면 쉽게 돌아갈 수 있지만 얼마 전 하룻밤 자고가면 안되겠냐고 하신 엄마 말이 생각나 이다음에 후회하기 전에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지도 않은 결심을 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이사 떡을 나르고 먹으며 김치를 달랑 앞에 두고 저녁밥을 먹었다.

                                                                                                                                                                                         

 일터에서 거의 생활하시니 정작 집에는 반찬이 없으셨고 가스 배달이 늦어지는 바람에 찌개를 끓일 수도 없었다. 어느 덧 9시가 되니 내일 하자며 안방은 소독하는 차원에서 약을 흠씬 뿌린 후 문을 닫고는 마루에서 엄마랑 자기로 하고 두터운 전기요에 이불을 폈다. 이사 오면 씻기가 불편할까봐 어제 저녁에 깨끗하게 씻었다는 엄마가 고양이 세수를 하시길 레 이사 와서 먼지가 얼만데 엄마? 공주라며 놀려드리고...ㅎㅎ

 

     

 

 난 연신 걸레질에 땀을 흘렸으니 기어코 쫄쫄쫄 흐르는 물에 헹굼을 한 건지 만건지도 모르겠는 샤워기로 피로를 날린 후 시집가서 처음으로 엄마 옆에 누웠다. 따뜻해서 좋았다. 그동안 가까이 살아서 하룻밤을 잘 필요조차 없었는데 이사 가시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것이 낯선 곳이지만 포근했다. 밤 10시도 안됐는데 잠이 오겠는가! 하지만 불을 켜 놓으니 눈이 부셔서 일단 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와서 엄마와 떨어졌었다.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 옆에 누운 것이다. 엄마가 추울까봐 자꾸만 이불을 덮어주셨다. 한참 이야기 하다 언뜻 잠이 들었나? 새벽 3시쯤 일어나셔서 왔다 갔다 하신다. 주무실 때 습관이시라는데 엄마 심심할까봐 다시 도란도란하다 5시쯤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아직도 6시쯤인데 아버지께서 주무시던 방에 불이 켜져 있어...속으로 친정이지만 딸 재우려고 일어나 무엇을 정리하시고 싶어도 불편하지나 않으실지 하여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엄마는 다시 주무실 예정이라고 계속 누우라고 했지만 이왕에 하룻밤이며 사실 도와드린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가 맞는 상황이어서 가구들 배치를 돕고 책 정리에 아버지께서 시장하시다니 아직 가스가 연결 되지 않아 전기를 사용하는 요리 기구를 찾아서 고기를 구웠다. 두 분 다 깊이 있게 주무시지 못하니 심란했다고 할까?

 

 오후 4시경, 집에도 가야하고 정리하다 나온 오래된 곡식들, 고춧잎 말린 것, 며늘이 사다주었던 마 가루 등등 ...아끼다 못 드셔서 벌레 난 것들을 작은 밭에다 거름으로 주신다하여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아버지 일터에 날라드릴 겸 집을 나섰다. 계단을 오르실 때 불편해하셔서 여태껏 쭈그리고 일하셨으니까 천천히 걸으면 오히려 다리와 허리운동도 될 것이라 걸어가자고 말씀 드렸던 것이다.

 

 "아버지, 일을 너무 심하게 하시니 다리가 불편하시지요, 몸을 아끼셔야 합니다."

 "그래, 85세까지는 일을 한다고 내다보는데...

쉬어줘야겠지?"

 

 오전 중 일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상속에 대해 언뜻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셔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지만...이런 이야기 또한 헤어지기 전에 마음에 걸려서 신경 쓰지 마시라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네 이야기가 옳다며 동조해주셨는데 그런 것을 내다보고 도와드렸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일터에 도착해보니 두 달 사이에 새롭게 길이 나고 주차장이 생기며 아버지 농사짓는 땅은 몇 평으로 좁아들었지만 침침했던 주위가 깨끗하게 정리 되어 아버지 건물은 더욱 살아나있었다. 김장에 보태 쓰라며 무 한 뿌리를 쑤욱 뽑아주셨는데 그 무로 김치를 담가서 그런 가 달콤하면서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중심을 갖고 살아오셨으니 모든 일이 잘되리라 믿는다.

                                                                   

 

  2015년  11월   21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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