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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고아 고무나무

평산 2019. 3. 30. 22:13



      



 어느 날 화분 4개가 우리 동(棟) 뒷벽에 나란히 있어서...

누군가가 집이 좁아 잠시 내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날이 추워져도 그대로 있어 버리고 이사를 갔나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여러 갈레라, 어쩌다 그 쪽으로 와야 보게 되는데,

용케도 영하 10도를 한번 넘겼지만 겉모습이 그대로였고, 

화분 하나를 누가 들여갔나 3개가 남아있었다.


 다시 영하 10도의 추운날을 예보하듯 초저녁부터 찬바람에 을씨년스럽던 날!

마트에 다녀오다 쪼르륵 놓여있는 화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일 영하 10도가 넘는다는데, 어쩌나!'

두 번째 겪고 나면 죽을 지도 몰라 짐들을 내려놓고 후다닥 나왔다.


 몇 년 전부터 화분을 늘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었다.

점점 무거운 것 들기도 어렵고 겨울이면 추위에 옮겨줘야해서 일을 줄이려는 참이었다.

허나, 화분 3개 중 집에 없는 중간크기의 고무나무를 택하고 들고 갈 수 있을까?

움직여보니 들을 만 했으나 손을 대자마자 도둑이라도 된 냥 가슴이 두근거렸다.

cctv에 찍힐거라며 다급해져서 쉬지 않고 열이 올라 붉은 얼굴로,

수도꼭지가 있는 베란다까지 단숨에 옮겼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문을 닫았어도 심장이 커다랗게 뛰었다.

 "아휴~~~ 헉헉헉~~ 도둑질을 어이하리."


 물을 뿌려 잎과 화분을 닦아주고 우리 집에 온 사연을 주절주절 들려주는데,

낯설어 어색해하면서도 추위를 피하게 되어 고마워하는 것 같았고,

어두운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끼 뿌리가 나타나 귀엽고 대견스러웠다.

베란다마저 냉기가 가득해 물이 빠졌을 무렵 마루 안쪽으로 옮기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연에 들락거리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가 널 구해준 것이니, 네가 날 기쁘게 해주려는 것이었니?'


 그 후로 고무나무 화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날만 알 수 없는 힘에 들 수 있었다.



 




    2019년  3월  30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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