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동굴계단이다.

도착하니 한창 패션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전시회를 보러갔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건축이나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별 흥미가 일지 않았다. 더욱이 주변에는 동대문과 서울성곽이 자리 잡아

고전미가 흐르는 곳이어서 우주선 같이 생긴 건물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만들어 일부러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있단다.




 그녀 또한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이며 볼거리인데 무슨 소리냐며 이곳으로 약속을 정했다.

별 기대 없이 할 말이 많다고 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셈으로 온 것이었다.

모델들인가, 유난히 키가 큰 젊은 남녀가 구경거리였고 주위가 웅성웅성 했는데,

이 넓은 곳에서 어찌 만날까 싶었지만 전화 덕분에 쉽게 만났다.

세 개의 커다란 공간 중 배움터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해설사가 동행하여 이곳 건축에 대해 이것저것 들었다는 그녀는

계단도 마무리가 다르다며 양끝을 자세히 보란다...ㅎㅎ




 무심코 지났던 문들도 안쪽으로 기울어진 사선으로 되어있음을 이야기하였고,




 4층으로 올라오니 건물 지붕이 보였는데 바닥에 잔디를 심어 열기를 식히는 역할도 한다나?

곡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크기가 다른 알루미늄 판 4만 여장이 들어갔으며,

판 뒤에 번호를 일일이 매겨서 헤매지 않고 조립했다는데 듣다보니 점점 재미가 일고 있었다.




 하지만 30분쯤 걸어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물론 앉아서 쉬는 것도 좋았다. 밖은 난데없이 비가 내리고 그 풍경도 커다란 창문으로 봐줄만 했다.

점심을 먹기로 해서 간단하게 먹고 왔더니 건네는 달달한 빵이 반가웠으며,

한적하고 비 오는 분위기에 이끌려 창밖을 담으려고 일어섰었다.


 그 순간 어떤 사나이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지나가려는 듯하였다.

지나가길 기다렸으나 빤히 바라봄이 심하다 싶을 무렵 손짓을 하며 지나가시라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웃갸웃?


 그랬다. 나와 같이 걸었던 그녀는 그 사나이와 서로 아는 사이였다.

물론 나도 학생시절에 오며가며 봐왔던 남학생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변한 모습을 잘 몰랐을 뿐인데 그녀는 어떻게 또 다른 사람 만난다는 이야기 없이 여기까지 왔을까?

이제 보니 올라오며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았었다. 어디에 있으니 오라고 했을 것이다.

사나이도 자신이 온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며 그녀에게 묻는다.

오랜만에 반갑기는 했으나 이 당황스러움은 뭐지?


 그 아이가 온다면 내가 안 나올 줄 알고 그랬을까,

본인만 예쁘게 하고 나오려고 숨겼나!

할 이야기가 많다더니 이 만남을 일컬었을까!

언뜻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다지만 배신감 정도는 아니어도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데... 아닌데...

왜 갑자기 이런 만남을 만들었을까!




 더 이상 구경은 없이 계단으로 올라왔으니 이번에는 새롭게 돌돌돌 돌아가는 길로 내려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서 올라 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셋이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천장 레일을 따라 덤덤하게 걸었다.


 


 느릿느릿 이런 모습도 보면서...ㅎㅎ

그동안 일이 잘 풀렸을까 사나이는 평온한 얼굴로 보였다.

오는 줄 미리 알았으면 나도 이래저래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비가 와서 야외 패션쇼는 연기되었나?

한참 이곳 동굴계단을 오르내려야 할 시간인데 밑에서만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화면에 나오는 모델들을 잠시 구경하다 점심 먹으려고 이곳을 떠났다.

비는 잠시 멈추었고 건축 이야기에 재밌다 멈춰졌지만 20대 때의 그 아이가 나타나 가슴이 뛰기도 했다.

자유롭고 재미났던 순간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2019년  4월  4일  평산.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