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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의 길'이 생겼다고 해서 궁금하였다.

시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로 3년 다녔으니 地圖를 보고 대충 짐작했으나

실제로 와보니 없던 길을 내느라고 애쓴 만큼 보람 있을까 싶었다. 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산책길이 돌담길로 끝나다 '광화문 연가' 덕분에 정동교회나 정동극장까지 넓혀지더니

이제 '고종의 길'이 생겨 사람들의 동선이 길어지고 많아지긴 했다.




 고종의 길은 빨간 화살표 구간인 듯!

파란색은 우리가 극장을 나와 걸었던 곳!




 고종은 경복궁에서 여장을 하고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와 무려 1년을 지냈다.

시간이 흐르니 백성들은 비겁하다 나오시라 외쳐대고 나라가 심란해지자 

시간을 벌기 위해 당시 수리 중이던 덕수궁으로 가겠다며 버티다가

결국 러시아공사관에서 영국대사관을 지나 덕수궁으로 향한 길을 '고종의 길'이라 하였나!

황후가 죽은 후 일본이 두려워 피한 것과 같으니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얼마큼 가니 도심 속에 한적한 '정동공원'이 나오고 오른쪽 계단 위로...




 1885년에 착공하여 1890년에 준공된 러시아공사관이 보였다.

6.25 때 불타서 남은 곳이란 이 건축물뿐이라는데 러시아는 고종을 공사관에 머물게 하며

나무를 베어다 팔고, 광산을 개발하고, 고래잡이를 하는 등 많은 이익을 챙겼다.

다른 열강들도 이때다 달려들어 미국은 경인선 철도사업권을 가져가고,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던 프랑스는 경의선 철도 사업권을 얻어갔다니

이보다 무능한 임금에 힘없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정동으로 나와 모교에 들러서...




 언덕위 조그만 교회당이란 '정동교회'를 지나는데...

학교 다닐 때는 노랫말처럼 작은 교회당으로 보였으나 양쪽으로 제법 확장된 모습(?)이어서

이젠 조그만 교회당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요번에 가장 뜻깊게 본 건물은 예원여중 오른쪽에 있던 중명전(重明展)으로

건축양식이 멋있게 다가왔는데 러시아공사관과 더불어 설계자는 러시아 건축 기사 사바틴이었다.

이 일대는 원래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으나 현재의 덕수궁을 확장할 때 포함된 곳으로

중명전은 1899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져 1904년 경운궁(현재의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1907년 강제퇴위 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며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였다.




 미국대사관저 돌담을 지나고 있다. 

초창기 서울성곽을 쌓았던 돌들처럼 역사가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오면 이곳 대사관저에서 머물렀는데 보안 때문에...

창문 커튼을 절대로 걷으면 안 된다고 무섭게 하달이 왔었다. 총알이 날아온다며...ㅎㅎ




덕수궁 북쪽 돌담길을 가다보면...



 

 영국대사관의 빨간 벽돌담과 나란하게 가는 구간이 나온다.

이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와 볼거리라도 있지, 러시아공사관으로 가는 길은 삭막하고

그야말로 죄인이 숨어 다니는 길 같이 만들어져서 매력이 없었다.




 영국대사관 끝부분에서 갑자기 덕수궁 안쪽으로 길이 휘어져 석조전이 보이며 반가웠다.

이만큼이라도 공짜로 덕수궁을 보는 것이다...ㅎㅎ...




 1000원을 낸 사람과 아닌 사람이 이렇게 갈린다.

 "아저씨, 저 쪽으로 들어가면 안 돼요?"

 "가고 싶지요?"

 "네...ㅎㅎ..."

 "나도 들여보내고 싶은데 저 나무에 cctv가 달려있어요...ㅎㅎㅎ..."


 나무덱크를 나오면 바로 서울시청이 눈에 들어오며 지하철 시청역 3번 출구가 보인다.

시청이나 광화문쪽에 가게 되면 찾아보고 싶었던 곳 '고종의 길'을 걷게 되어 개운하였으며,

시장끼에 모 대통령이 즐겼다는 칼국수까지 먹었으니 영화 보러 나와서 몇 가지를 한 거야?






 2019년  4월  19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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