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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마을이 나타나 반가웠다.

일행도 건너편에서 힐끗 보이는 듯했으니...ㅎㅎ

혼자서 잠시 불안했으나 시간 여유가 있어

산책 다니 듯 이 순간을 즐기자 다독였었다.

 

 

 

 계곡을 따라 지도 오른쪽 주차장에서 끝까지 온 것이다.

중간의 대원사에서 돌아갈 줄 알았다가

(그렇다면 주워진 4시간이 많았지... ^^)

유평마을에 도착한 것인데 홀로 걸은 거리가 더 길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이쪽 방향으로 내려오자면,

가장 먼저 닿는 마을이란다.

 

 

 

 아고~~~

그러니까 돌아가는 다리가 이 다리였어?

혼자서 코가 막혔지만 반가운 건 어찌하리!

나중에 보니 절에서 머물다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다.

암튼, 그래도 되는 것임을 모르고 다녀요.^^

 

 

 

 단풍철이라 손님이 많아야 하는데...

山에서 내려오는 손님이 없어 음식점은 텅 비었고 

곶감만 주렁주렁 그리움이 매달려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잠은 어디서 자요?"

친절하게 곶감 앞에 있던 물건을 치워주셨네!

 

 

 

 편안한 길로 내려오다 건너편 지나온 길이 보였다.

마을이 언제 나올까 걱정하며 걸었던 기념으로...^^

 

 

 

 못 봤던 금강송과 대원사가 보이니...

앞으로 40분쯤 더 가야 하지만 다 온 셈이다.

내리막인 넓은 도로보다 오던 길로 다시 갈까 했지만

다리가 편한 곳으로 가자고 해서 그리하였다.

자동차를 세워서 타고 내려온 사람도 있었다네?...ㅎㅎ

도착하니 20분의 여유가 있었다^^

 

 

 

 저녁 먹기 전 들린 곳은 남명 조식의 '산천재'였다.

남명(南冥 曺植·1501~1572년)은 나이 61세가 되었을 때

고향인 합천을 떠나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

산청군 덕산면으로 이사를 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산천재(山天齋)를 지었는데 집을 옮긴 이유는

지리산을 흠모하였기 때문이란다.

앞마당에 그가 손수 심었다는 매화나무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남명매'였다.

 

 

 

 산천재(山天齋)란 산속에 있는 하늘의 형상을 본받아

군자가 강건하고 독실하게 스스로를 빛냄으로써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선생은 항상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차고 다니며

깨어있는 선비정신을 강조하고, 이치를 깨우쳤으면

과감한 실천을 강조했으니 그의 문하에서 정인홍,

곽재우 등 의병장이 배출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 천왕봉이다.

산청에서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 천왕봉을 닮고 싶다.'며

선생이 아침마다 올려다보셨단다.

 '과연 멋지다.'

 

 

 

 흑돼지가 유명한 산청이었다.

고택에 갔더니 뒷간들이 모두 높았는데 이유는

제주도처럼 밑에서 돼지를 키웠다는 이야기였다.

많이 걸었으니 고기와 나물반찬을 푸짐하게 먹고,

10시가 못 되어 잠들었다.

내일은 어디를 갈가나!

 

 

 

 

  2020. 11. 7. 평산의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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