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책 나갔다 은행이 떨어진 곳을 만났다.
며칠 만에 갔더니 조금도 아니고 한 무더기였다.
낮은 산길이라 사람들이 발견했으면 없어졌을 법도 한데
명절 준비로 다들 바빠 은행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몇 곳은 그냥 지나쳤으나 둘레길 반 바퀴를 돌아
집으로 돌아올 즈음 예쁘기도 해서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어 냄새나는 은행을 어떻게 줍지?'
두리번두리번하며 아직은 가을이 깊지 않아 은행나무 앞
플라타너스의 떨어진 잎도 귀했다.
손바닥에 잎을 몇 개 포개어 은행을 줍는데
움푹 들어간 구석이 없으니 몇 알 줍기도 전 자꾸 떨어져서
급기야는 모자를 벗어 플라타너스 잎을 깔고 돌아오다가
이것도 불안하여 땀 닦으려고 가져간 손수건으로
전체를 싸맸더니 가뿐해져 신경 쓰이지 않고 좋았다.
한편 며칠 전 동네의 가로수인 은행나무는 가을이 와서
민원이 들어갔나 전기공사 할 때처럼 높이 올라가는 트럭을
타고 가지를 자르고 있기에 밑가지만 자르겠지 했는데
위로 올라가며 모두 자르더니 가운데 남은 굵은 몸체마저
사정없이 토막 내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침 파란불이 켜져서 안 봐도 되어 다행이구나 싶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가을이면 구청에서 날 잡아
개천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를 동네 주민들과 함께 축제처럼
수확하던데 좋은 방법을 강구해야지 노란 잎에 낭만이다
어쩌다 하다 냄새난다고 뿌리째 뽑다니 말이야!
이세상에서 해로운 나무는 없다 들었다.
대책 없이 심을 때는 언제고 이럴 것이면 열매를
맺기 전에 실행하던지 나 자신이 은행나무인 듯 몹시 아팠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 저마다의 꿈이 있을 것이고
태어난 보람을 느끼고 싶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산에 있는 은행나무는 행운이라 생각되었다.
언제라도 잘릴 일이 없을 것이고 은행알 또한 다른 때보다
소중하게 보였으며 냄새가 사람의 거시기에 비할까?
창문을 열고 배를 갈라 씻어 신문지에 널었더니
맑은 은행알들이 동글동글 웃는 모습이다.
'나라도 귀하게 여기마!'
2024년 9월 15일 평산.
'일상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텃밭 쪽파, 고추 따기 (7) | 2024.10.05 |
---|---|
껍질 도라지 (2) | 2024.09.25 |
서리태 콩국수 (12) | 2024.08.29 |
상추와 열무를 심다. (23) | 2024.08.09 |
쪽파 심은 날 (20) | 202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