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붉나무를 관찰해 왔다. 성장이 오동나무보다 빨랐으며... 꽃대가 올라오는 모습으로, 같은 나무인데도 꽃대의 모양이 달라 보였는데 나머지 꽃대의 모습은 이렇게 원추형이었다. 암꽃 수꽃이 다르다더니 시간이 가도 이런 모습이라 수꽃(?)인가 추측해 보다가 그래도 꽃은 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손으로 떼어 비벼보았으나 동그라미가 작아 꽃봉오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잎 사이에 날개가 달린 붉나무의 잎! 작년에는 꽃대가 겨우 2개 올라왔는데 올해는 대충 세었어도 30개가 넘었고 가지가 사방으로 번져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만큼 성장이 빨랐다. 시간이 지나자 이런 모양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이부자진딧물'이 잎의 즙액을 빨아먹으면 그 자극으로 주변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벌레집이 만들어지며 안에는 약 1만..
올여름에는 열무김치를 못 담갔다. 장마철 비가 많이 와서 열무값이 비싸기도 했고 5월에 담근 배추김치와 가끔 씀바귀김치를 즐기며 무채나물과 쪽파김치 한번 담가먹었더니 가을이 온 것이다. 도시락을 쌀 때는 반찬과 김치가 많이 들어갔는데 싸질 않으니 올 김장은 내년 3~ 4월에 떨어질 만큼만 담그려고 예상해 본다. 그러잖아도 쪽파김치가 한 접시 남아 무채나물이 떨어질 무렵 무슨 김치를 담가야 하나 살피다 돌산갓과 열무가 눈에 들어왔다. 돌산갓은 마트에서 잘 보이지 않는 채소로 반가워서 두 단 사 왔고(1년에 한두 번쯤 해 먹음) 열무는 3단을 묶어 5000이 되지 않아 왜 이리 싸졌지? 두 단만 하고 싶었으나 값은 똑같을 테니... ㅎㅎ 다 합쳐야 만원이 조금 넘어서 배달은커녕 양손에 들고 씩씩하게 왔다. ..
1층 서쪽은 두 개의 커다란 방과 화장실, 옷방이 있었다는데 초기에는 아들의 놀이방으로 쓰다가 이후에는 손남방으로 썼다 하며 지금은 아내 메리의 미술작품이 여럿 보였다. 집에서 일해주던 하인과 도와주는 여인들을 그렸는데 솜씨가 좋았다. 몇 가지 색을 쓰지 않고도 우리네의 정서와 맞는 색감과 부드러움과 여백의 美를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음) 알버트와 메리는 1942년 조선총독부가 외국인 추방령을 내리자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배를 타 약 두 달 만에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닿았단다. 이렇게 대륙을 돌아갔다니 여행으로 삼았을지 모르지만 추방당해서 재산을 정리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지도를 보는 내가 피곤함이 느껴졌다. 2층은 오롯이 가족들만 사용하는 곳이어서 아끼는 물..
'딜쿠샤'란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란 뜻으로 1875년 미국의 네바다 주에서 출생한 앨버트 W. 테일러와 영국 출신의 메리 린리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이다. 이 집에 대한 소개가 신문에 여러 번 나와서 언젠가는 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사직공원 방향으로 200m(?)쯤 오르다 보면 바로여서 찾기 쉬웠다.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1897년에 앨버트는 조선에 입국하였고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는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연극배우로 동양의 여러 나라를 순회하던 중 일본 요코하마에서 앨버트를 만났다고 한다. 1917년에 결혼한 후 광산사업과 '테일러 상회'를 경영하였고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는 미국 AP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고종의 국장, 3.1 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한가위를 바로 지나 마트에 갔더니... 번쩍 눈에 띄는 상품이 있었다. 원래 가격의 1/5에 도라지와 토란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싼 거예요?" "오늘 중으로 팔아야 해서 내렸습니다." 도라지와 토란은 둘 다 다듬기가 어려워 망설여지긴 했으나 국내산이기도 했고 상품이 똘똘해서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2팩씩 샀다. 별안간 일거리를 만든 것이다...ㅎㅎ 저녁을 해 먹고 씻어서 커다란 그릇에 담아 아시안게임 축구 후반전을 보며 도라지의 실뿌리만 제거하고 가운데를 갈라 어렵지 않게 까서 (한 시간이 못 되 모조리 까서 스스로 놀라웠음) 하루 동안 꾸덕하게 말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고추장과 올리고당을 조금 섞어 재우기만 했어도 연하고 맛이 좋아 자연스럽게 집어먹다가 파, 마늘, 양파를 첨가해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