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예박물관을 다녀왔기에 이제 갈 일 있을까 했더니 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 공예 요소를 찾아 소개한다는 글을 읽었다. 1960년대 드레스를 사진으로만 봤어도 아름다움에 이끌려 가보고 싶었다. 아직은 실내에서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사정이라 박물관 밖에서 햇볕을 쬐며 고소한 빵과 차 한 잔 하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전시 1동 3층으로 향했다. 2023년 4월 2일까지 전시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장은 길게 이런 모습으로 의상들 뒤로 작가의 설치미술이 보였고 하나하나 옷 구경하는데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지금 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멋스러웠다. 노라노가 1962년에 만들었다는 웨딩드레스다. 개방성은 덜하지만 단순한 듯 은은함이 돋보였고, 그 시절에 이런 드레스를 ..

동창들과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만났다. 아침에 0도로 다소 쌀쌀했으나 봄기운을 느끼고 싶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역 앞에 모여들었다. 독립문역 바로 위는 서대문역사공원이다. 바로 근처에 중국 사신을 맞이했던 영은문을 허물고 1896년 독립협회에서 세운 독립문이 있고 서대문 형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도 무료인데 형무소는 유료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줄은 서있지 않았지만 작은 문안으로 줄지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길게 이어진 형무소의 옆길을 따라 담 너머로 보이는 안산으로 향한다. 총 9명이 반갑게 만났는데 완주한 사람은 7명으로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역시나 재밌고 상쾌하다. 새로운 건물이 보여 다음에 한번 들러보리라 한다.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었다. 이곳부터 경사가 좀 있다. 형무소에서 복..

붓글씨를 같이 쓰다가 느닷없이 일을 하게 되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직업을 갖었다 끝마친 친구가 있다. 시원 섭섭할까, 마중 간다는 마음으로 얼굴을 대하고 점심 먹으러 들어갔는데 테이블이 하나 들어가는 아주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아 셋이서 오붓하게 먹고 어린이대공원을 거닐었다. 이곳은 원래 고관직이 드나들던 골프장였다가 외곽으로 이사를 가고 대공원이 들어섰다는데 그래서일까 대지가 넉넉하고 나무들 나이가 있었으며 근처에 사는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교육터와 놀이터, 어른들에게는 쉬어가는 장소가 될 것이었다. 입장료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밑동이 굵은 플라타너스가 늠름하였고...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 自'라는 주제 아래 시민참여 작품으로 제목은 '일어서자 초인상' '서울, 황금알을 품다' 였으니 어려운 가운데..

예전에 이 동네를 지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선농단이 보이질 않고 아주 커다란 부잣집들이 줄지어 있어서 집 구경이 좋았으며 부근에 설렁탕의 유래가 만들어진 곳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우연히 지나다 '선농단역사공원'에 들러보았다. 우리 집 누군가가 나온 초등학교를 지나며 요즘치고는 학교가 크고 주말이라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오거리를 지나니 이내 주택가로 조용해졌다. 제단과 몇 개의 초석, 향나무만 남아있던 곳을 2009~ 2015년에 정비사업으로 복원하였단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냈던 곳으로 신라에서 조선까지 이어졌으며 일제강점기 직전인 순종 3년(1909년)에 농사의 신인 신농씨와 토지의 신인 후직씨의 위패가 사직단으로 옮겨져 폐지된 상황이었다. 선농제를 올린 뒤 왕은 몸소 농사..

저녁 먹기 전 시간이 남아 동해에 잠시 들렀다. 주워진 시간이 40분이었나? 촛대바위만 본다고 한 것이... 예전에 없었던 해암정 (1361년 고려 공민왕 때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벼슬을 사양하고 세운 정자로 이곳에서 후학을 기르고 여행을 보낸 곳)이 보였고, 한국의 석림이란 능파대가 있었다. 당시에는 촛대바위만 보고 돌아선 듯 기억이 희미한데 부근의 바위들을 총칭하여 능파대라 하였다. 암석기둥(라피에)들은 석회암이 지하수의 용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지형을 말하지만 이곳은 파도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해안 암석기둥에 속하였다. 촛대바위가 궁금해 걸음을 빨리했는데... 이제 주인공이라 할 것도 없이 세월과 풍파에 몸집이 작아지고 초라하여서... 주위의 바위무리군과 함께 해야 볼만하였다. (바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