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35분쯤 일어났다. 멀리 가는 여행이라 서둘러야 했지만... 30분은 더 자도 됐는데 이왕 일찍 준비하기로 했다. 전날 눈이 온 다음 땅이 얼어서 지하철역까지 캄캄한 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7시에 사당역에서 버스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주위가 어둡더니 날이 밝자 하얀 설경이 펼쳐져 상고대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풍경으로 내내 이어지겠구나 했는데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에 들어서자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햇볕이 쨍쨍하여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여행에 당첨되면 연말을 화려하게 보내게 되어 좋겠다 싶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마음 비웠는데 막상 가게 되니 들떴다. 여러 체험에 겨울바다를 보게 된다니 말이다. 바다는 차가운 칼바람에 파도가 어찌나 세던지 뒤집어쓰..

겨울에는 처음 온 듯하다. 연말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마음도 한몫하였다. 작은 연못가에 백일홍이 세 그루 있었는데 사방으로 뻗어 의젓한 것이 지긋한 고목이었다. 푸릇푸릇할 때는 몇 그루였는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가지마다 짚으로 싸준 풍경이 꽃 필 때처럼 근사하였고 발 시리다 치마를 입혀주었네! 어쩌다 지하철 연결이 좋아서 30분 먼저 왔다. 기온이 내려갔지만 햇볕이 있으면 외출할만하다. 눈 덮인 걸 보면 '거울못'이 얼었다는 뜻인데... 벌써 얼다니 쪼금 시시하였다.^^ 반면에 연못 양지쪽에는 담쟁이덩굴을 타고 철없는 아이비가 힘차게 오르고 있었다. 때로는 이처럼 철들지 않아도 좋으리!^^ 합스부르크 전시가 있어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요번에는 고려청자를 보러 왔고 한글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아 또 발걸..

아버지의 가을 선물이다.먹기보다는 겨울이 다 가도록 실컷 바라다보고 따스함과 넉넉함을 배우고 싶구나 한다.한동안 현관에 장식장 위에 진열해 놓는 것이다. 올봄에는 작년 것을 비로소 먹으려고 갈라보니 한쪽이 썩어 들어가 철렁했었다. 나머지 반쪽 또한 주홍빛 두툼한 살은 어디로 가고 가는 실들이 수없이 얽히며 그 사이사이에 빛을 잃은 호박씨가 매달려 있어 절정이 지나면 맛 대신 이상한 기운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들었을 때 전체적인 무게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그랬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번에는 단단한 호박의 달콤함이 남아 있고 눈으로도 충분히 호강한 다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점을 찾아보려 하겠다. 내놓으신 것 차에 싣고 와 모두 이렇게 튼실한가 했더니 며칠 전 친정집 마루에 놓인 호박이 자잘한 것..

오전에 눈이 펑펑 내렸다. 청소하고 나니 함박눈이라 금세 하얗게 변했다.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 우산을 쓸까 하다 거추장스러워 모자 쓰고 지팡이를 들고나갔다. 눈이 많이 올 듯해도 겨울철 2~ 3번이다. 누려야 한다.^^ 눈이 온 양을 생각하면 장화를 신어야 했는데 트레킹화를 신어 금세 파묻히기도 했다. 앞서간 사람들 발자국이 도움되었다.^^ 사철나무 군락지가 곳곳에 있어 때 아닌 싱그러움을 주지만 추워서 회색빛으로 변하고, 작은 소나무에 몽글몽글... 철쭉에 소복소복... 회양목은 한층 화려해지고... 넓게 자리 잡은 황매화 가야금을 뜯고 있었다. 짧은 길로 다녀가려다 한 바퀴를 돌려니 이때가 3시 30분쯤으로 산은 빨리 추워져 서둘러야 했다. 사람을 두 명이나 만났을까? 곳곳에 아무 것도 지나간 흔적 ..

겨울이 되었으니 따뜻한 차 끓여보았다. 재료들 사이에 서로 궁합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냉동고에 인삼 썰어 놓은 것 내리고, 작년에 담갔던 생강청, 햇 건대추, 도라지는 나물 해 먹고 남은 잔뿌리, 영임이가 끓일 시간 없다고 전해준 잔나비걸상버섯 한 조각, 아버지께서 10년 전에 주신 헛개나무와 열매도 이사 오면서 안고 왔는데 예전 약초가 귀하다는 생각에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슴뿔 모양의 쓴맛이 나는 노각영지버섯! 가장 큰 냄비에 달이다가 인삼은 거품이 나며 갑자기 끓어 넘침으로 더 큰 들통으로 옮겨서 끓기 시작하자 불을 줄여 은근히 3시간쯤 달였을까, 생강청과 대추에 들어 있던 단맛이 우러나 제법 깊은 맛이 났다. 이제 쌍화차도 거부감 없이 향기조차 좋아지고, 따끈한 대추차는 눈을 감으며 음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