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자제작의 시작은 통일신라 9세기 무렵, 茶 문화의 유행과 함께 중국 자기가 들어오면서 소비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여 10c 고려에 들어서는 청자와 백자 생산에 성공하였다.] [가장 이른 시기의 가마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경기도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등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벽돌로 가마를 만들었으며 11c 초에는 전남 강진 용운리와 삼흥리 등에서 청자제작에 적합한 진흙 가마로 발전하였다.] 백자부터 구경하다가 어느 사이에 분위기가 컴컴해져서 청자실에 온 것을 알았다. 이러다 나오겠지 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었다. '사유의 방'을 만들어 반가사유상 두 점으로 인기를 얻어 요번에는 청자실을 만들게 되었다는데 이런 연유로나마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에 다녀감은 뿌듯한 일일 것이다...

어릴 적 집에 감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장독대옆, 아래채 부엌 앞, 그리고 뒤깐 옆! 대봉감은 아니었지만 모양이 동글지 않고 약간 네모 난 감이었는데 가을이면 넓은 인삼채반에 켜켜이 올려 뒤꼍으로 가는 모퉁이 창고에 보관했었다. 나무판자를 위에서 하나씩 틈으로 내려야 닫아지는 창고의 문은 지금 생각하면 불편했을 텐데 겉에서 보기에는 판자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보이므로 나름 멋스러웠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홍시감이 되었을까! 어느 날 판자들을 들어 올려 꺼낼 즈음엔 키에 맞게 높낮이가 되어야 비로소 감들이 보였고 이미 뭉그러져 흘러내리는 것, 여전히 딱딱한 것, 알맞게 익은 감이 있어서 골라골라 그릇에 가득 담아 내왔었다. 간식이 없던 시절이지만 형제들은 물크덩한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삼척시 '유기농수산연구교육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를 여행에 초대해 준 기관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와우~~~ ㅎㅎ 어떻게 이런 지형 앞에 건물이 있을까? 산을 일부러 깎은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지형이라 해서 더욱 놀랐다. 이곳에서 삼척시의 전반적인 현황과 요즘 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방의 고민거리인 인구감소에 따른 귀농귀촌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다. 먼저 귀농귀촌에 뜻이 있으면 이런저런 교육을 미리미리 비대면으로 받아 교육받은 시간을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였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는 혜택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귀농귀촌할 지역을 꾸준히 탐색해보고 한 달 살이를 경험해보며 귀농인의 집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정작 농사짓기가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다음날이 밝았다. 춥기는 해서 산책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 먹으러 나가는 김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숙소는 삼척해상케이블카 타는 곳에 가까이 있었다. 황태해장국으로 추위를 물리치고... 소시지를 만들기 위해 오잉크팜으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잉크'란 영어권 돼지의 울음소리다. 꿀꿀 농장보다야 이름이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곳곳이 영어라 아쉬움은 남았다.^^ 식품을 만드는 곳이니만큼 여러 개의 수도꼭지가 있어 수시로 손 씻기 좋았고 앞치마며 머릿수건에 소시지 만드는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소시지 만드는 차례는 이러했지만 우리는... 1차 고기를 정선하고 분쇄하는 과정과 2차로 소금을 넣고 배합하는 과정이 끝난 상태에서 반..

점심을 먹은 후 미로정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2017년 5월에 개장한 곳으로 폐교된 분교를 이용하여 두부체험장, 야생화 체험실, 주막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운동장에는 카누체험장과 숙박시설로 방갈로까지 조성되어서 복잡함이 싫은 분들은 이곳에 머물며 한적함을 누려도 될 법하였다. 건물이 낮고 아담하여 꼬마들이 드나들던 교실이란 표시가 났다. 입구에 '늙지 않는 마을'이라 쓰여있었네?^^ 건물에 들어서니 삼척에서 생산되는 나물들과 콩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부 만들기 체험비용은 만원으로 고소한 국산두부를 만들어보는 셈인데 젊은이들이 일하고 있어 여러 프로그램들이 귀농귀촌을 도와주는 역할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건물 뒤에 두부만들기 체험장이 있었다. 1. 콩을 불린 후 맷돌에 간다. 명절이면 직접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