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먹기 전 시간이 남아 동해에 잠시 들렀다. 주워진 시간이 40분이었나? 촛대바위만 본다고 한 것이... 예전에 없었던 해암정 (1361년 고려 공민왕 때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벼슬을 사양하고 세운 정자로 이곳에서 후학을 기르고 여행을 보낸 곳)이 보였고, 한국의 석림이란 능파대가 있었다. 당시에는 촛대바위만 보고 돌아선 듯 기억이 희미한데 부근의 바위들을 총칭하여 능파대라 하였다. 암석기둥(라피에)들은 석회암이 지하수의 용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지형을 말하지만 이곳은 파도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해안 암석기둥에 속하였다. 촛대바위가 궁금해 걸음을 빨리했는데... 이제 주인공이라 할 것도 없이 세월과 풍파에 몸집이 작아지고 초라하여서... 주위의 바위무리군과 함께 해야 볼만하였다. (바위가 ..

[청자제작의 시작은 통일신라 9세기 무렵, 茶 문화의 유행과 함께 중국 자기가 들어오면서 소비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여 10c 고려에 들어서는 청자와 백자 생산에 성공하였다.] [가장 이른 시기의 가마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경기도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등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벽돌로 가마를 만들었으며 11c 초에는 전남 강진 용운리와 삼흥리 등에서 청자제작에 적합한 진흙 가마로 발전하였다.] 백자부터 구경하다가 어느 사이에 분위기가 컴컴해져서 청자실에 온 것을 알았다. 이러다 나오겠지 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었다. '사유의 방'을 만들어 반가사유상 두 점으로 인기를 얻어 요번에는 청자실을 만들게 되었다는데 이런 연유로나마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에 다녀감은 뿌듯한 일일 것이다...

삼척시 '유기농수산연구교육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를 여행에 초대해 준 기관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와우~~~ ㅎㅎ 어떻게 이런 지형 앞에 건물이 있을까? 산을 일부러 깎은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지형이라 해서 더욱 놀랐다. 이곳에서 삼척시의 전반적인 현황과 요즘 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방의 고민거리인 인구감소에 따른 귀농귀촌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다. 먼저 귀농귀촌에 뜻이 있으면 이런저런 교육을 미리미리 비대면으로 받아 교육받은 시간을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였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는 혜택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귀농귀촌할 지역을 꾸준히 탐색해보고 한 달 살이를 경험해보며 귀농인의 집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정작 농사짓기가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다음날이 밝았다. 춥기는 해서 산책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 먹으러 나가는 김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숙소는 삼척해상케이블카 타는 곳에 가까이 있었다. 황태해장국으로 추위를 물리치고... 소시지를 만들기 위해 오잉크팜으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잉크'란 영어권 돼지의 울음소리다. 꿀꿀 농장보다야 이름이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곳곳이 영어라 아쉬움은 남았다.^^ 식품을 만드는 곳이니만큼 여러 개의 수도꼭지가 있어 수시로 손 씻기 좋았고 앞치마며 머릿수건에 소시지 만드는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소시지 만드는 차례는 이러했지만 우리는... 1차 고기를 정선하고 분쇄하는 과정과 2차로 소금을 넣고 배합하는 과정이 끝난 상태에서 반..

새벽 4시 35분쯤 일어났다. 멀리 가는 여행이라 서둘러야 했지만... 30분은 더 자도 됐는데 이왕 일찍 준비하기로 했다. 전날 눈이 온 다음 땅이 얼어서 지하철역까지 캄캄한 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7시에 사당역에서 버스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주위가 어둡더니 날이 밝자 하얀 설경이 펼쳐져 상고대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풍경으로 내내 이어지겠구나 했는데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에 들어서자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햇볕이 쨍쨍하여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여행에 당첨되면 연말을 화려하게 보내게 되어 좋겠다 싶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마음 비웠는데 막상 가게 되니 들떴다. 여러 체험에 겨울바다를 보게 된다니 말이다. 바다는 차가운 칼바람에 파도가 어찌나 세던지 뒤집어쓰..